[사라지는 골목상권] ⑧ 양재동 꽃시장 “‘최악’ 지났죠…직접 꽃 주며 축하할일 늘었으면”

입력 2021-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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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양재동 꽃시장(화훼공판장) 입구. (이다원 기자 leedw@)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최악이었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힘들죠. 서로 꽃을 주고받는 기쁜 일이 늘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25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화훼공판장)을 찾았다. 갓 핀 생화 향기와 향긋한 풀 냄새가 가득했지만, 매장마다 희비가 갈렸다.

양재동 꽃시장은 ‘꽃의 메카’다. 1991년 문을 열어 3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며 국내 최대 화훼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쪽에는 절화·난·관엽·춘란류 등 다양한 화훼를 경매하는 공판장이 있다. 또한, 일반 손님을 위해 생화와 화환, 분화 및 관련 자재를 판매하는 매장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꽃 시장은 최근 침체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졸업식, 입학식 등 대면 행사가 연이어 취소됐고 결혼식과 장례식도 간소화했다. 꽃시장 입장에선 ‘대목’을 놓친 셈이다.

양재동 꽃시장에서는 분화와 생화 모두를 만나볼 수 있다. 2019년 8월 기준으로 분화온실 1만1776곳, 중도매인점포 6446곳, 화환점포 3886곳 등이 입주해 있다.

▲25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분화점포 가동에 식물을 사거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붐빈다. (이다원 기자 leedw@)

양재동 꽃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분화 매장은 붐볐다.

개포동에 산다는 신 모(62) 씨는 2주에 한 번꼴로 꽃시장을 찾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출이 줄어들면서 반려식물에 관한 관심과 애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 씨는 “자주 오다 보니 단골 가게가 생기기도 하고 사장님에게 식물 키우는 방법도 많이 배우고 있다”며 “오늘도 딸과 함께 왔다. 올 때마다 ‘힐링’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양재동에서 분화를 판매한 지 수년째인 A 씨는 “최근에는 직접 식물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작년 이맘때보다 사람이 확실히 늘었고 주말에는 더 많다”고 설명했다.

▲25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꽃시장 지하의 화환점포. 드문드문 방문객이 보인다. (이다원 기자 leedw@)

반면 생화와 꽃다발, 화환 등을 판매하는 지하꽃시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꽃을 사러 온 가족이나 선물용으로 꽃다발을 만드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꽃이 만발했지만 홀로 앉아있거나 조용히 꽃대를 다듬는 사장님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지하꽃시장에서 꽃 판매장을 운영하는 B 씨(49)는 요새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B 씨는 “최근에는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고 와서 생화를 몇 단씩 사가는 일도 있다”며 “여름꽃이 막 나올 시점인 만큼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이달 24일까지 aT 화훼공판장 절화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5.24% 늘었다. 3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35.05% 늘기도 했다.

B 씨는 “지난해는 최악이었다. 지금 좀 회복하긴 했지만, 대량주문이 여전히 없다”며 “가끔 오는 손님들이 반갑고 고맙다”고 말했다.

▲25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꽃시장 지하의 화환점포. 드문드문 방문객이 보인다. (이다원 기자 leedw@)

다만 정부 지원책에 크게 반응이 나타나진 않는 모습이다. 정부는 화훼 농가와 점포를 지원하기 위해 경매수수료 인하, 꽃 소비 증진 등의 방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묻자 B씨는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보다 낫지만, 완전 회복까진 요원하다.

축하 화환을 만들고 있던 김 모 씨는 “지난해 졸업식이며 결혼식이며 행사가 줄었지 않나”며 “바닥에서 조금 올라왔을 뿐 여전히 매출은 낮다”고 푸념했다. 그는 “얼굴을 보고 축하하거나 슬퍼하는 일이 많아야 하는데…얼른 코로나19가 끝나야지 않겠나”고 되물으며 꽃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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