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골목상권] ④ 아현동 가구 거리, “절간마냥 조용...대출 돌려막기로 겨우 버텨”

입력 2021-04-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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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가구거리가 한산하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절간마냥 조용하잖아요.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대출받고, 못 갚아서 또 빌리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15일 아현동 가구 거리는 가벼운 기침 소리가 골목에 메아리칠 정도로 고요했다. 간간이 보이는 빈 점포 앞에는 낡은 가구들이 처량히 버려져 있었다. 입구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상인은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쳐 읽고 있다. 행인이 지나갈 때면 신문을 접고 일어나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안으로는 직원이 침대에 쌓인 먼지를 수시로 돌돌이 테이프로 떼어낸다. 결혼을 앞둔 행복한 신혼부부나 설렌 마음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아현동 가구 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단지다. 1980년대 형성돼 현재 100여 개 매장이 입점해 있다. 도심에서 다양한 살림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신혼부부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매장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가구거리가 한산하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15년째 가구점을 운영하는 김영한 씨는 “누가 여기를 거리라고 하겠냐, 절간인지 농촌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며 “원래도 잘 나가는 시장이 아니었는데 작년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고 푸념했다.

이어 “폐업한 가게가 한둘이 아닌데 나는 나이가 있다 보니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장사가 이렇게 안 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힘들고, 대출받고 못 갚아서 또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가구거리 점포에 ‘임대 문의’ 종이가 붙어있다. (윤기쁨 기자 @modest12)

결혼과 이사가 많은 계절 특성상 봄은 가구업계 성수기에 해당한다. 재택근무가 생활화되면서 가구 수요가 증가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지만, 이는 일부 대형ㆍ중견 가구점에만 해당한다. 규모가 작은 영세 점포는 월세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대부분이다. 연령대가 높은 상인들은 온라인이나 비대면과도 거리가 멀다.

상인 박 모 씨(69)는 “손님은 하루에 3~4명 올까 말까인데 그렇다고 방문한 사람들이 다 구매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애초에 발품 팔러 오는 시장인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몇 개를 팔았느냐보다 이번 달 월세를 갚느냐 못 갚느냐를 고민하고 있는데, 아마 이 구역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빚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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