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행기 타고픈 맘 사라지네…'오싹' 체험극 '플라이트'

입력 2021-04-04 09:45수정 2021-04-0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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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에서 헤드폰 소리에만 집중…난기류 급강하 완벽 재현

▲오프라인 체험극 '플라이트' 티켓은 비행기 탑승권처럼 생겼다. 본 공연에선 여권 형태로 생긴 티켓도 받을 수 있다. (김소희 기자 ksh@)
이것은 리뷰인가. 체험기인가. 고작 30여 분간 경험한 것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결코 아니다. 뛰쳐나가야 할지 수십 번 고민했고,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려고도 애썼다. 결국 유체이탈을 하고 온 듯하다. '편명 WR2021'을 탑승한 소감이다.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2층 리허설룸에 다녀왔다. 비행기 내부처럼 꾸며진 세트에서 여객기 비행을 재현하는 이머시브 오디오 체험극 '플라이트'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항공권처럼 생긴 표를 받아들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비행기 내부와 똑같이 생긴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이코노미석 객실이 완벽히 재현된 모습이었다. 지정된 좌석을 찾고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썼다.

"혹시라도 비행을 원치 않는 승객이 계신다면 지금이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비행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체험 전 문 앞에서 극장 직원이 '혹시 비행기와 관련한 트라우마가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 전까지만 해도 콧방귀를 꼈다.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여유를 갖고 자세를 고쳐앉을 때쯤 승무원의 말투가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승무원이 '또 다른' 승무원으로 나타난다. '저 사람은 누구지?'

▲'플라이트'를 경험하는 관객들은 모두 헤드폰을 착용한다. (우란문화재단)

이윽고 불빛이 완벽하게 차단된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헤드폰을 낀 상태였기에 '청각'에만 온 신경이 기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탑승객과 승무원이 말을 주고받는데, 뭔가 잘못된 듯하다. 이어 기상 악화로 인한 비행기의 굉음 등이 귀를 때린다. "넌 비행기 사고로 죽을 거야." 누군가 다가와 속삭인다. 나에게 경고하는 듯한 그 말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난기류를 만나서 급강하할 때 느낄 수 있는 두려운 상황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좌석을 통해 진동이 느껴질 땐 항공재난 현장이 떠오른다. 손발이 굳고 이 상황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비행기를 탄 자신이 원망스럽다.

'양자역학이론'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무심코 빛이 번뜩여 눈을 떴는데, 다른 차원에 있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이는 체험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란문화재단과 2016년 설립된 영국의 극단 '다크필드'가 기획했다. 다크필드는 '360도' 입체음향을 활용한 '이머시브 오디오 씨어터'를 지향한다. 한국어로 '에워싸는 듯한'으로 해석되는 '이머시브'는 정보나 감각 등이 단순히 시청각을 넘어 그 이상의 여러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뜻한다.

▲비행 체험이 진행되는 '무대'는 이코노미 객실을 재현했다. (우란문화재단)

플라이트는 2018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매진을 기록했고, 2019년 영국 '볼트 페스티벌'에서 이노베이션 어워드(Innovation Award) 후보에 올랐다. 세계 투어에서 관객 11만 명을 모은 화제작이다.

안전하게 착륙했다. 객실에 불빛이 들어오고 탑승을 알리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앞 좌석에 앉은 사람과 안부를 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 좌석 띄어 앉기를 진행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 해외에선 촘촘히 앉은 관객끼리 서로 손을 잡는 등 의지했다고 한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4월 12일까지. 탑승권 가격은 1만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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