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미얀마 ‘세 손가락 경례’의 의미

입력 2021-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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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부장

‘세 손가락 경례’가 미얀마 시민 불복종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세 손가락 경례가 어떻게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유혈진압을 일삼는 군부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미얀마 시민의 상징이 된 것일까.

학창 시절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에서 활동했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세 손가락 경례가 익숙할 것이다. 스카우트는 하나님과 국가를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스카우트 규율을 준수한다는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기 때문.

그러나 지금의 세 손가락 경례는 유명 소설이자 이를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히트작인 ‘헝거게임’ 시리즈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극 중 독재국가 판엠에 맞서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의 인사이자 저항의 상징이 바로 세 손가락 경례였다.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세 손가락은 감사와 존경,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 인사를 뜻했다.

소설과 영화라는 허구에서 비롯된 세 손가락 경례가 어느새 미얀마와 태국, 홍콩 등 동남아시아에서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시민의 상징이 되면서 역사의 한 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태국이었다. 2014년 5월 태국 시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며칠 뒤 시위를 벌이던 한 시민운동가가 갑자기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반(反) 쿠데타 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 경례를 대중화한 주역들은 “세 손가락이 자유와 평등, 형제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상징한다”며 “당시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독재자를 향해 세 손가락을 올리며 저항하는 영화 헝거게임의 장면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는 사실 ‘3’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깊다. 삼권분립도 있고 중국의 국부인 쑨원이 제시한 민족주의와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도 있다. 세 손가락 경례가 시민의 호응을 얻은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세 손가락 경례는 태국을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홍콩에서도 2014년 보편적 참정권과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이 일어났을 때 세 손가락 경례를 했고 이제 그 물결은 미얀마로도 넘어왔다. 즉 세 손가락 경례는 대만에서 홍콩, 태국,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권위주의에 맞선 젊은이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안아주며 함께 저항하는 연대의 제스처가 됐다. 이들 국가에서 밀크티가 인기 있는 음료라는 점에 착안해 젊은 네티즌들이 온라인상에서 연대하는 밀크티 동맹도 탄생했다.

중요한 것은 세 손가락 경례와 밀크티 동맹처럼 ‘문화의 힘’이 총칼에 굴하지 않는 뜨거운 저항정신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바로 인터넷을 차단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끊었다는 점은 독재자들이 이런 문화의 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도 동남아시아 시민의 항쟁에서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현지 시민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으로 마침내 독재 정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한국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태국과 미얀마, 홍콩의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이런 것을 단순히 뿌듯해하면서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 한국도 동남아 시민의 숭고한 저항에 힘을 실어야 한다. 이들의 투쟁이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연대해야 한다. 미얀마 등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도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까지 수십 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민주화가 성공하기까지에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동남아에서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은 민주화를 이룩하면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우뚝 서고 한류로 전 세계 문화에도 새 물결을 일으킨 한국에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다. 또 자신들의 나라도 언젠가는 한국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들을 위해 우리도 다 함께 ‘세 손가락 경례’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baej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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