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이 시작됐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을 두고 양측은 첫날부터 치열하게 맞섰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오후 2시 임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 변론 준비기일을 열었다.
변론 준비기일은 증거 제출 목록, 변론 방식 등을 정하는 절차다. 주심을 맡은 이석태 헌법재판관, 이영진 수명재판관, 이미선 수명재판관이 절차를 진행했다.
이날 임 부장판사는 참석하지 않고 양측 법률대리인이 참석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강찬우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윤근수 법무법인 해인 대표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탄핵을 소추한 국회 측 대리인은 양홍석, 신미용, 이명웅 변호사가 선임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이 단장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 핵심은 △세월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 관여 △프로야구선수 도박죄 약식명령 공판 회부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재판 관여 등이다.
임 부장판사 측은 재판 관여 부분에 대해 해당 재판부에 의견을 전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시가 아닌 의견 제시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소추사실에 담긴 것처럼 형사수석부장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지시한 것이 아니고 선배 법관으로서 조언한 것이라는 취지다.
국회 측이 임 부장판사의 각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법 조항을 위반했는지도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징계 처분 이후 같은 사유로 인한 탄핵 소추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 각하해야 하고, 임기만료로 퇴임하면서 탄핵 결정할 수 없게 돼 실익이 없어 청구가 부적법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국회 측은 “탄핵 소추 대상이 된 사실관계가 헌법이나 법률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는 저희가 보기에도 충분히 개진됐다고는 보기 어렵다”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잘 지적하고 있다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각 범죄 사실별 어떤 조항에 위배되는지 추가 검토 중”이라며 “전체 동일성 넘지 않는 범위에서 미세 조정하겠다”고 했다.
양 측은 증인 채택을 두고도 맞섰다. 국회 측은 우선 증인 6명을 신문해야 한다고 봤으나 임 부장판사 측은 대부분 형사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진술했으므로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재는 검토를 거쳐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관들은 “오래 끌 것은 아닌 것 같고 사상 최초의 중요 사건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서 하겠다”며 “오늘로써 준비절차는 종료하고 여러 주장을 서면으로 내면 기일 외 빨리 결정하고 변론기일 열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본격 변론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양 측은 형사재판기록 등을 받는 데 동의했으나 기록이 1만2000쪽에 달하고 검찰 수사기록은 20만 쪽 수준이어서 비실명화 작업 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헌재는 지난달 26일 첫 변론 준비기일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임 전 부장판사 측이 주심 재판관을 상대로 기피신청을 내면서 연기됐다. 임 부장판사는 이석태 재판관의 이력 일부가 자신의 탄핵 사유와 연관성이 있어 공정한 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심리를 거쳐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피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 심리로 진행된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당시 주요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면서도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사법행정권이 없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국회는 위헌적 행위가 있었다며 지난달 4일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뒤 헌재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가 법관, 전직 공무원의 파면 여부를 심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임기가 만료돼 법복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