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딜레마’ 백신 1억 회분 접종 조기 달성했지만 의약품 공급 위기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VA메디컬센터를 방문해 백신 접종을 살피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20일(현지시간) 정치 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코로나19 백신 1억 회분 접종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앞서 취임 후 100일 내로 목표 기간을 잡았지만, 58일 만에 이뤄낸 것이다. 미국에선 지난주 하루 평균 250만 명이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취임 58일째에 목표를 달성하게 된 것을 발표하게 돼 자랑스럽다”며 “1억 회분 뒤에는 인생이 희망으로 바뀐 수백만 명의 삶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전염병을 이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격적인 백신 조달을 통해 접종률을 높이고 있지만, 문제는 다른 의약품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전례 없는 노력을 한 결과, 다른 주요 의약품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19 백신 제조사 화이자는 미국 내 병원들에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제, 테스토스테론 2가지 유형 등 총 네 개 제품의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에는 “백신 생산 증가로 올해 하반기 해당 의약품 공급의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고 적혔다.

화이자가 언급한 4가지 의약품은 자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과 동일한 성분·제조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화이자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에 백신 약 20억 회분을 배포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백신 제조사 모더나, 존슨앤드존슨(J&J)과 하청 계약을 맺은 캐털런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캐털런트는 대량의 백신 주문으로 인해 기존에 공급하던 호라이즌의 갑상선 안구 질환 치료제 생산을 지난해 12월부터 손 놓고 있다. 호라이즌의 팀 월버트 최고경영자(CEO)는 “의약품 부족 현상은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는 환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공급이 복구되지 않으면 이들은 시력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있다”고 우려했다.

FT는 제약사 임원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제조사들의 의약품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했지만, 제약 업계의 3분의 1은 기존 생산라인에서 백신에 필요한 재료와 장비 등을 쓰고 있어 다른 의약품 공급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급 문제는 의약품만 직면한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백신이 들어가는 유리병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 유리 제조업체 중 하나인 쇼트는 새로운 유리병을 주문하면 1년에서 1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쇼트의 크리스토퍼 캐시디 북미 담당 부사장은 “유리병 부족은 인슐린을 비롯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활용되는 미국 내 거의 모든 유형의 주사 약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신 제조사 외에 부품·재료 제조사에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조달에 최우선순위를 맞추고 있다.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 등 이웃 국가에도 400만 회분의 백신을 보낼 예정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미국인들의 백신 접종”이라며 “이웃이 바이러스를 억제하도록 하는 것도 전염병을 종식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