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진이형ㆍ용진이형…젊어진 오너의 야구단 활용법

입력 2021-03-18 14:46수정 2021-03-1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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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우승하자 '집행검' 선물ㆍ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SNS로 구단 엠블럼 공개

NC다이노스의 창단 첫 우승으로 마무리됐던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선 '집행검'의 등장이 우승만큼 화제가 됐다. 집행검은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 '리니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아이템이다. 김택진 구단주는 우승을 기념해 게임 아이템을 실물로 제작해 선수단에 선물로 줬고, 주장 양의지가 그라운드에서 샴페인 샤워 대신 집행검을 뽑아들며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연합뉴스)

누리꾼들은 "'택진이형'이 직접 대장장이가 돼 만든 그 검?" "게임회사다운 참신한 세리머니!"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미국 MLB닷컴은 "KBO에서 우승하면 거대한 검을 받게 된다"고 보도하며 국제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일 프로야구 시범경기 개막을 앞두고 올해 스토브리그(야구가 끝난 비시즌에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협상에 나서는 것을 통칭)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주인공은 SSG 랜더스(옛 SK와이번스)다. 비시즌 구단주가 SK그룹에서 신세계그룹으로 바뀌며 구단은 옷을 싹 갈아입었다. 새 주인의 투자로 MLB리거 추신수까지 영입하며 야구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야구단 자체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인수를 추진한 오너에도 관심이 높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대표로 하는 젊은 오너(구단주)의 스포츠구단 소통방식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점잖은 구단주'는 옛말…홍보 창구ㆍ긍정적 이미지로 잠재고객과 소통

재계의 야구사랑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故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은 1982년 OB베어스를 창단하고 초대 구단주를 맡았고, 아들인 박정원 회장이 지금도 두산베어스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그룹과 LG그룹, 한화그룹 등도 각각 삼성라이온스, LG트윈스, 한화이글스를 운영한다.

과거 오너들도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것뿐 아니라 비시즌에 전지훈련장을 찾아 회식비를 지원하고 선수를 격려하는 등 구단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출처=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SNS 갈무리)
그런데 '요즘 구단주'는 점잖은 모습과는 좀 다르다.

정 부회장은 12일 개인 SNS에 'SSG LANDERS'라는 글귀와 함께 구단 엠블럼을 공개했다. 정 부회장은 구단명 공개 전에 음성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서 "인천을 표현할 수 있고, 공항 중심으로 구단명을 정했다"고 발언했다.

팬들은 "무슨 야구단 홍보가 이렇게 고급스럽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로고와 엠블럼이 유치하다" 등 다양한 의견을 정 부회장 SNS에 남기기도 했다.

단순히 선수단에 회식비를 지원하고 야구장을 찾아 응원하는 것을 넘어 팬들과 구단 관련 소통의 중심에 선 정 부회장을 보고 "오너가 SSG 야구단 홍보맨이 됐다"는 농담이 나온다.

야구를 '찐(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김택진 대표는 2013년 자사가 개발한 전력영상분석시스템 'D라커'를 야구단에 도입했다. 이는 전력분석 부서에서 제공하는 영상 등을 선수와 코치들이 태블릿PC를 통해 볼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이다.

김 대표는 1군뿐 아니라 2군에 있는 전 선수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해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열정적인 야구사랑은 야구팬들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 오너의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이미지)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구팬들이 이들을 '구단주'가 아닌 '택진이형', '용진이형'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돈 안되는 프로구단?…자체 사업성 높인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모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야구뿐 아니라 축구와 농구, 배구 역시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 시장 규모가 워낙 작고, 티켓 판매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수익 구조 때문이다. SK와이번스도 2019년 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마저도 매출액 절반 이상이 모회사의 광고 수익으로, 입장료 수입은 80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SSG랜더스 엠블럼
새 구단주들은 야구장에서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는 점도 예전 회장님들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앞서 2016년 스타필드 하남 개점을 앞두고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며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서의 야구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야구장을 '체험의 장'으로 만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를 위해 먼저 야구 체험 시설과 야구 관련 매장 입점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홈구장인 생명파크 미야기’와 미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구장 ‘트루이스트 파크’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두 구장 모두 레스토랑과 숙박, 쇼핑 등 각종 문화시설이 자리해 '즐기는, 재미있는 야구장'으로 평가된다.

야구장을 활용한 자사 브랜드 홍보 방안도 고민 중이다. 이미 인천 문학구장에서 선보인 바 있는 이마트 브랜드룸, 이마트 바비큐존 등을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온라인 플랫폼 내 야구단 스토어 입점과 라이브커머스(라방)를 통한 상품 판매도 검토하고 있다"며 "신세계 포인트, 상품권, SSGPAY 등을 연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경기 접근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야구를 통한 오너들의 스포츠마케팅은 기업과 고객의 소통이 중시되는 시대상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이전과 달리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업가들의 동물적 감각이 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 주체로 떠오르는 MZ세대가 솔직하게 소통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고 그들의 편에 선다는 점을 캐치해 미래지향적 경영자들이 스포츠 마케팅 전면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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