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자사고 평가 기준 바꿔 소급적용…재량권 남용”

입력 2021-02-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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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ㆍ세화고 자사고 지위 유지…‘특목고 폐지' 정부 정책 빨간불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관계자 등이 정부의 자사고, 외고 폐지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배재고등학교와 세화고등학교에 대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처분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평가 기준을 비합리적으로 변경하고 이를 소급적용한 행위는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는 18일 학교법인 배재학당(배재고)과 일주세화학원(세화고)이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상대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변론을 모두 마치고 선고를 앞둔 자사고에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평가 중 변경한 기준 소급적용…날벼락 맞은 자사고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7월 배재고ㆍ세화고ㆍ경희고ㆍ숭문고ㆍ신일고ㆍ이대부고ㆍ중앙고ㆍ한대부고 등 8개 학교에 대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 운영성과 점수 미달로 지정 취소를 결정했다. 경기 안산 동산고와 부산 해운대고도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교육청은 2019년 자사고 평가에서 2014년과 비교해 운영성과 기준 점수를 60점에서 70점으로 상향하고 세부적인 평가 지표와 기준 등을 대폭 변경했다. 이에 따라 배재고는 65점, 세화고는 67.5점의 점수를 받아 탈락했다.

문제는 교육청이 평가 기간이 이미 대부분 지난 뒤에 변경한 기준을 운영 성과에 소급해 적용했다는 점이다. 2014년 기준에 맞춰 평가를 준비해오던 학교들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결국 당시 서울시 재지정 평가 대상 학교 13곳 중 8개교가 지정이 취소됐다.

이에 8개 학교는 두 곳씩 나눠 자사고 지위를 유지해달라는 행정소송과 함께 취소 처분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배재고와 세화고는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는 지정 목적 달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지난 5년간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평가대상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구체적인 기준을 공표해야 했다"며 "평가대상 기간 도중에 기준을 변경한 것이라면 내용을 구체적으로 통보하고 점수 산정 방식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예측 가능성을 보장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심사 아냐…입법 취지에도 반해"

법원은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평가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것은 행정청의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육청은 2019년 평가 지표와 기준을 중대하게 변경하고, 평가 대상 기간이 이미 대부분 지난 이후 학교의 운영 성과에 소급해 적용했다"며 "이는 사전 공표 제도의 입법 취지에 반하고 재지정 제도의 본질과 적법 절차의 원칙에서 도출되는 공정한 심사 요청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이 변경한 평가 지표 중 '상시적이고 안정적인 학부모 참여 보장을 위한 별도 공간으로서 학부모 회의실을 갖춰야 한다는 점', '학부모회 활동 지원 예산을 일정 금액 이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점' 등은 자사고 지정 목적의 달성 여부와 관련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지표는 특정한 정책적 목표를 담고 있어 일반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학교가 사전에 계획을 세워 집행해야 할 내용인데도 이를 무리하게 소급 적용하는 것은 예측하지 못할 불이익을 가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감사 및 지적 사례 지표'의 감점 한도를 크게 확대하고, '교원의 전문성 산정을 위한 노력'의 세부 기준을 갑작스럽게 최저 등급을 받을 정도로 변경해 소급 적용한 것 등은 합리적인 범위 내의 평가 기준 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데도 중대하게 변경된 기준을 평가 기간에 소급 적용해 자사고 지정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것"이라며 "종전의 기준을 신뢰하고 운영한 학교들에 예측하지 못한 침익적 효과를 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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