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시대] ① ‘퀀텀 혁명’이 그려내는 미래…비즈니스 현장 본격 침투 시작

입력 2021-02-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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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업, 제조·유통 등 적용 움직임
교통시스템서 신약·신소재 개발 등 광범위한 용도
암호체계 무력화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스템 파괴 우려도

▲IBM의 미국 뉴욕 요크타운하이츠 소재 J.왓슨리서치에 있는 양자컴퓨터. 뉴욕/AP뉴시스

양자컴퓨터 기술과 인공지능(AI)가 합쳐지면 전 세계가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 빅테크 기업인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 일명 다보스포럼에서 양자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이 같이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온라인으로 진행된 ‘다보스 어젠다’ 서밋에서도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양자컴퓨터 기술이 실생활에 본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양자컴퓨터 시대’ 도래를 예고했다.

‘200초’ 양자컴퓨터 vs. ‘1만 년’ 슈퍼컴퓨터

최근 들어 슈퍼컴퓨터 능력보다 1억 배나 빠르다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전 세계 관심이 뜨겁다. 아직 우리 실생활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양자컴퓨터는 이미 산업 곳곳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빅테크 기업은 물론 기존 제조업에서부터 유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이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은 물론 응용에 나서기 시작했다.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리는 연산을 단 200초 만에 해결할 만큼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정보 표현 단위로 1 또는 0의 이진법의 비트(bit)를 쓰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역학을 토대로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큐비트(퀀텀비트, qubit)’를 사용하는 것이 그 비결이다. 그만큼 기존 컴퓨터보다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 연산처리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빠른 것이다.

폭스바겐·BMW가 ‘퀀텀’에 빠진 이유

자동차 업계는 최근 양자컴퓨터 도입에 적극적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캐나다 디웨이브시스템스(D-Wave Systems)와 손잡고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교통 체증을 해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웨이브시스템스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한 업체다. 양사는 최단 경로를 소개해주는 기존 서비스를 넘어서 도로에 있는 수많은 차량의 통행 루트를 동시에 파악, 교통 체증을 최소화하는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교통시스템뿐 아니라 제조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장에서 최종 공정 중 하나인 도장 작업에도 양자컴퓨터 기술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BMW도 최근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에 발을 들였다. 미국 IT전문매체 ZD넷에 따르면 BMW는 지난달 미국의 허니웰(Honeywell)과 싱가포르 스타트업 엔트로피카랩스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 양자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 제조와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제조단계뿐만 아니라 클라우드를 통해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트랩이온 양자컴퓨터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들이 양자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조, 공정, 유통 단계에서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이에 대응하기에는 기존 컴퓨터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술 개발을 넘어 실제 성과를 거둔 기업도 많다. 일본 자동차부품업체 덴소는 양자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종전 80%였던 무인 생산 기계 가동률을 95%로 끌어올렸다. 일본 식료품 업체 큐피는 생산 공장의 인력 배치와 배송 시스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자컴퓨터 기술 활용, 기존에 도출해 내지 못했던 배송 루트를 발견하면서 차량 편수를 최대 8% 줄였다. 이 업체는 일본 전역으로 확대 적용하면 100억 엔대(약 1064억 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캐나다 슈퍼마켓 체인 세이브온푸즈도 유통상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양자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활용 분야로 기대되는 또 다른 분야는 신소재다. 양자역학은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을 원자의 결합이라고 본다. 원자의 결합 방법에 따라 플라스틱이 되거나 유리, 또는 반도체가 된다. 이들이 결합하는 패턴을 양자물리 법칙으로 계산한다면 신소재 개발도 가능하다. 같은 원리로 사람 개개인 증상에 맞는 맞춤형 약물이나 반영구적 수명을 가진 배터리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에너지와 식량 등 지구상의 다양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꿈의 컴퓨터’,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 될 수도

양자컴퓨터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꿈의 컴퓨터’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인류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기존 암호체계가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더라도 암호를 해독하려면 숫자부터 문자, 기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우를 조합해야 하고, 이 경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려 사실상 해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양자 세계에서는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동시에 일어난다. 일부 국가와 기관이 군사 등의 목적으로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차이 구글 CEO는 “양자컴퓨터 시대는 기회뿐 아니라 도전과제도 있을 것”이라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공조하는 것처럼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과 관련한 안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암호체계가 핵심인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양자컴퓨터 등장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 런던 소재 양자컴퓨터 업체 ORCA의 리처드 머레이 CEO는 “양자컴퓨터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채굴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기존 가상화폐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 시대에 맞는 새 암호화 표준을 사용하면 가상화폐 시스템 붕괴를 피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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