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절벽 부추기는 ‘공공 시행’ 재건축

입력 2021-02-07 17:1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대책 발표 후 취득한 주택…공공개발 땐 현금 청산 대상
“정비사업 후보지 선정 순간 시장 죽을 것” 거래 절벽 우려
재건축 부담금ㆍ실거주 의무 면제에 일부 지역선 기대감 커

정부가 서울 등 도심 주택 공급 방안으로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을 들고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재건축 부담금ㆍ실거주 의무 면제 같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투기 억제책ㆍ이익 환수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부 지역과 단지에선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인센티브에 기대감을 나타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후암1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공공 직접시행 재개발 얘기를 꺼내자 언성을 높였다. 그는 "후보지로 선정되는 순간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해져 시장 자체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투기 방지책으로 부동산 거래 절벽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2ㆍ4 대책 이후 매매 주택은 아파트 입주권 못받아

정부는 4일 발표한 '대도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에서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을 신설, 2025년까지 13만6000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사업장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재개발ㆍ재건축에 참여한다는 점에선 지난해 발표된 '공공재개발ㆍ재건축'(공공 참여형 재개발ㆍ재건축)과 유사하지만 이들 사업과 비교하면 공기업 권한이 더 강력하다. 아파트 사업ㆍ분양 계획 수립 등 아파트 이름 명명권을 제외한 사실상 재개발ㆍ재건축 사업 전권을 공기업이 쥐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서울역과 인접한 데다 노후 주택이 많은 후암1구역은 공공 직접 시행 재개발 사업지 1순위로 꼽힌다. 그럼에도 후암1구역 추진위가 우려하는 건 정부가 이번 대책 발표와 함께 꺼내든 투기 억제책이다. 정부는 대책 발표일(4일) 이후 매매되는 부동산에 대해선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으로 공급되는 아파트 입주권(분양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투기성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실수요자라도 부동산 구매가 늦으면 감정평가액만 받고 집을 공공 시행자에게 내줘야 하는 것이다. 후암1구역 추진위 측은 "공공 시행 개발지에 주택을 구입하면 현금청산해버린다고 하는데 이러면 누가 거래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우려는 재건축 단지에서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R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강남엔 재건축 아파트를 여러 채를 소유한 다주택자가 많다"며 "이렇게 매수 수요를 완전히 막아놓으면 다주택자들이 집을 정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손발을 묶어놓는 조치"라고 말했다.


공공재건축 1호,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으로 방향 트나
“후암1구역 등 실익 없고 용적률만 높이는 쪽방촌 개발” 지적

정부는 이 같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장에 가구 수 확대(기존 가구 수 대비 1.3~1.5배 이상)ㆍ추가 수익률(민간사업 대비 10~30%포인트 추가 수익) 보장 등이다. 재건축 규제 상징처럼 여겨지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2년 실거주 의무도 면제해주기로 했다. 대신 토지주 수익 보장을 제외한 나머지 개발이익은 공공주택 공급ㆍ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공공사업에 쓰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강남구 대치동 E공인 관계자는 "추가 수익을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공공주택 짓는 데 쓰겠다는 게 정부 얘기 아니냐"며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내놓았지만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암동 L공인 관계자도 "조합원 사이에서 공공 주도로 재개발하다 용적률만 높여 쪽방촌을 짓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대체로 반대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선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을 반기는 흐름도 감지된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곡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공공 직접 시행 재건축을 검토하기로 했다. 추진위에선 재건축 부담금 면제 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성 확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활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주 서울에서 처음으로 공공재건축 심층 컨설팅을 신청했지만, 사업성 부족으로 고민이 적지 않았다.

그간 집값 상승이나 개발 바람에서 소외된 지역에서도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을 기대하는 눈치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S공인 관계자는 “이곳은 그동안 개발이 너무 안돼 주거 환경 정비가 시급하다”며 “공공 주도 개발을 이곳에서 진행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제법 호응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7일 KBS 방송에 출연해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에 대해 "기존 사업보다 훨씬 강한 혜택이 있으니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예의주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울 등 도심 주택 공급 방안으로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을 들고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 노후 주택가 모습. (정용욱 기자. dragon@)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