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재계 기상도] 3·4세 경영시대…달라진 인재 등용 문법

입력 2021-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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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인사 문법 틀 벗어나 T.P.O 식 인사 스타일
외부 인재 수혈 적극…정시에서 수시로…공격적인 원포인트 인사
신구(新舊) 조화 통한 팀워크 강화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올해 1월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 각계대표 및 특별초청 인사들과의 신년 합동 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재계는 3·4세 경영시대를 맞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은 회상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작년 10월 회장으로 승진하며 전면에 나섰다. 한화는 3세, GS그룹은 4세 경영인을 경영 일선에 등판시켰다. 구본준 ㈜LG 고문의 독립으로 구광모 회장은 본격적인 LG 4세 경영을 시작했다.

3·4세 경영인들은 이전 1·2세대들과 달리 인사에 여러 변화를 주며, 기존 인사 문법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실용주의’가 깔렸다.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리거나 관례 등 기존 인사 문법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상황·장소에 따라 즉각 처방을 내리는 이른바 ‘티피오(TPO, TIMEㆍPLACEㆍOCCASION)’ 인사다.

외부인재ㆍ수시ㆍ원포인트 상시화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 승현준(세바스찬 승) 삼성리서치 사장. (사진제공=각 사)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외부인재 수혈이다. 1·2세대 경영인들은 내부 인재를 승진시키는 성과보상주의 인사를 많이 단행했다. 구성원이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품게 하면서 인사를 관리했다. 과거에도 외부인재 영입은 있었지만, 해외 박사 출신이나 수재급 한국인 인재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에는 경쟁 기업, 동종 업계 출신 인사나 외국인 인재 모셔오기에도 적극적이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3M 출신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수장에 앉혔다. 1974년 LG화학 창립 이래 첫 외부 출신 CEO였다.

정의선 회장은 기아차 사장이던 2000년대 중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기아차 최고디자인 책임자로 앉혔다.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디자인 혁신 경영’을 선언하고 ‘K 시리즈’, ‘스포티지’, ‘쏘렌토’ 등을 흥행시켰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인사 방침이 정시에서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3·4세 경영인들의 새로운 전략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AI(인공지능)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승현준(세바스찬 승) 교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다니엘 리 교수를 영입했는데, 이들은 정기 인사가 아닌 2018년 6월에 삼성에 합류했다. 승현준 교수의 삼성리서치 소장(사장) 내정도 연말 인사가 아닌 작년 6월에 이뤄졌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3월 기아차 신임 사장에 송호성 글로벌사업관리본부장을 선임했고, 7월에는 이용우 제네시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이노션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11월에는 디자인 기반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최고창조책임자(CCO)를 신설하고, 담당 임원에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재영입하는 등 수시 인사를 단행했다.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SK그룹 하반기 공채 필기전형인 'SK종합역량검사(SKCT)'에서 수험생들이 입실을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신입사원 모집도 수시채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SK그룹은 2019년 정기공채를 폐지했고, LG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수시 인사와 함께 공격적인 원포인트 인사도 주요 트렌드로 잡아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취임 후 연말 인사에 앞서 원포인트 인사로 권영수 부회장과 하현회 부회장을 맞바꾸는 핀셋 인사를 단행했다. LG디스플레이 정호영 사장 선임도 2019년 9월 깜짝 발표됐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첫 원포인트 인사로 허서홍 GS에너지 전무를 GS로 이동시켰다.

스타 경영인 vs 팀워크

▲(왼쪽부터) 윤종용 전 삼성전자 상임고문 부회장,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총수 1·2세대들이 스타 경영인 발굴에 힘썼다면, 3·4세대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것도 달라진 인사 모습이다. 이건희 회장은 과거 윤종용, 진대제, 황창규, 이기태, 권오현 등 S급 스타 전문경영인을 배출시켰다. 이 회장이 평소 강조한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 철학 덕분이었다.

삼성 출신의 스타 경영인들은 ‘황의 법칙’, ‘애니콜 신화’, ‘초격차’ 등의 수식어를 만들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세계화 시대가 개막하는 과거 경제 성장 과도기에서는 1명의 천재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성원을 이끌어 회사를 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 고학력 시대를 겪으면서 기술적으로나 인재의 능력이 상향 평준화됐다. 3·4세 경영인들은 1명의 천재 대신 기존 구성원들과의 팀워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인재 경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 사장,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과 LG, 현대차, SK그룹 등은 최근 인사에서 주요 계열사 CEO를 대부분 유임시키는 한편, 차세대 주자들을 사업부장으로 전면 배치하며 부분적인 세대교체를 이뤘다. 아울러 회사 성장에 이바지한 기존 CEO들을 용퇴시키는 대신 이들의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문과 자문 역할을 맡겼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은 이번 인사에서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해 경륜 있는 최고경영진을 유지하고, 미래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젊은 인재들을 과감히 발탁했다”라며 “신구(新舊)의 조화를 통해 위기 극복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 모습이 엿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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