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전기차 경쟁 2라운드, 플랫폼이 승패 가른다

입력 2020-11-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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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과 현대기아차가 플랫폼 경쟁…완성된 플랫폼 판매하는 '라이선스 아웃'도 관건

▲하나의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다. 개발비용이 적게들고 부품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출처=canoo)

“이번 신차를 개발하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총 30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1990년대 말, 신차 발표회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발언이다. 그만큼 큰 비용을 투자한 신차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어느 틈엔가 이런 설명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차 개발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만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됐다. 나아가 ‘플랫폼 공유’도 개발비 감축에 한몫했다.

국산차 최초의 플랫폼 공유차는 1999년 등장한 현대차 EF쏘나타, 이후 등장한 기아차 옵티마다.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썼고, 두 차가 서스펜션 세팅과 디자인만 차이를 뒀다.

심지어 뒤이어 등장한 옵티마는 EF쏘나타 개발 과정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던, 후보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른바 ‘EF-B 보디’였다. 사실상 옵티마의 개발비는 여느 중형세단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던 셈이다.

▲이른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차를 위에 얹을 수 있다. 앞뒤 바퀴에 달린 모터 구동축 역시 바퀴마다 작은 모터를 장착하는, 이른바 '인-휠 모터' 방식을 쓰면 부피는 더 줄어든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전기차,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라서다
자동차 트렌드가 빠르게 친환경 EV(전기차) 시대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플랫폼 경쟁이 시작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두 가지 차를 개발하던 그 옛날과 사정이 달라졌다. 플랫폼 하나만 있으면 전체 제품군을 구성할 수도 있는 시대다.

먼저 배터리와 구동 모터 등을 포함한 ‘언더 보디’를 하나의 형태로 개발한다. 그 위에 각각 다른 차체를 얹는 방식이다. 이른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다. 차 바닥에 깔린 배터리를 중심으로 앞 또는 뒤쪽 차축에 구동 모터를 장착하는 방식이다.

앞바퀴 또는 뒷바퀴 중심에 달리는 대형 모터도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인-휠 모터'라고 불리는 소형 모터를 바퀴마다 안쪽에 장착하는 형태다. 이렇게 되면 차 바닥의 공간 활용성은 더 증가할 수 있다.

이렇게 잘 만든 전기차 플랫폼 하나는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복덩어리가 된다. 생산 설비와 인력을 줄일 수 있고 공정의 효율화도 가능한 것은 물론 생산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플랫폼 시대가 본격화되면 뭐가 달라지나?

플랫폼 만들기가 경지에 다다른 폭스바겐은 일찌감치 내연기관에서도 통합 플랫폼을 선보였다.

엔진과 굴림바퀴(전륜), 실내 대시보드까지 하나의 틀을 만들었고, 이를 기준으로 여러 차를 내놨다. 이른바 MQB 플랫폼이었다. MQB(Modulare QuerBaukasten)는 엔진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휠베이스와 차폭 등 보디 사이즈와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종류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 방식을 밑그림으로 전기차 플랫폼 MEB(Modular Electric Drive Matrix)도 개발했다. 폭스바겐의 전동 모듈화 플랫폼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전기차 모델 I.D.의 파생 모델도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2022년까지 이 MEB 플랫폼을 바탕으로 27가지의 새 모델 투입을 공언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전기차 통합 플랫폼 E-GMP(Global Module Platform) 개발을 마쳤다.

당장 내년부터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을 통해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4를 선보일 예정이다. 나아가 대형 SUV까지 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폭스바겐의 모듈 방식의 전동화 플랫폼 MEB. 폭스바겐은 2022년까지 이 MEB 플랫폼 하나를 바탕으로 27가지의 새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출처=미디어폭스바겐)

◇비슷비슷한 차들이 넘쳐날 전기차 시대
자동차는 엔진의 성격과 장착 위치와 굴림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성능을 낸다.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얹었어도 서스펜션의 구성과 엔진의 조율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차로 둔갑한다.

1990년대 말 등장했던 기아차 비운의 로드스터 '엘란'은 차고 넘치는 가속력을 지녔으나 엔진은 당시 중형세단(크레도스)에 얹었던 평범한 직렬 4기통 1.8리터짜리였다. 변속기를 차별화하고 엔진 세팅을 달리한 덕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기차 플랫폼이 일반화되면 전기차들 모두 차 성격이 비슷해지면서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차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가 하나의 개성으로 추앙받아온 20세기와 달리, 이제 그 가치가 단순 교통수단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라이선스 아웃(license-out)’…팔아야 살아남는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잘 만든 플랫폼 하나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낼 수 있다. 플랫폼을 후발주자, 또는 경쟁사에 판매하는 이른바 '라이선스 아웃'이다.

먼저 전기차 개발 여력이 없는 자동차 제조사라면 이런 잘 만든 전기차 플랫폼을 하나 구매하는 게 방법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기차를 개발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플랫폼 구매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

독일 폭스바겐과 한국의 현대ㆍ기아차, 일본 토요타, 미국의 GM이 노리는 분야가 바로 이 분야다. 이들 역시 돈만 된다면 경쟁사에도 전기차 플랫폼을 팔겠다는 전략이다.

▲단순하게 자사 새 모델을 위해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후발주자 나아가 경쟁사에도 플랫폼을 판매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플랫폼 활용 범위와 영역이 확대되면 생산 원가의 하락도 기대할 수 있다. (출처=미디어폭스바겐)

이 과정에서 단순히 판매 수익을 넘어 다양한 시너지도 기대된다. 더 많은 플랫폼을 찍게 되면 부품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친환경 전기차 시대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플랫폼 판매는 결과 못지않게 판매 과정도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가 플랫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현대모비스가 이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전기차 플랫폼을 사는 후발주자, 특히 경쟁사는 "현대ㆍ기아차에서 전기차 플랫폼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반면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모비스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동개발했다"고 포장해주면 그들에게는 구입 명분이 뚜렷해진다. 고객사의 자존심도 중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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