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빈곤 보고서③] “부모님 병원비에 자녀 교육비…하루살이도 빠듯”

입력 2020-10-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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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퇴직연금·주택연금 등
늦은 도입에 의무가입도 제한적
20·30대 현실 행복 추구 중시
노후소득 보장제 거부 여론 커

수도권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황민영(57·여·가명) 씨는 40대 후반에야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가입 기간이 짧은 탓에 만 60세까지 보험료를 내도 다달이 받는 연금액(예상치)은 5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진작 노후를 준비했다면 좋았겠지만 먹고살기 바빴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식당과 키즈카페 등에서 일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었다. 그 돈으로 두 남매를 키우고, 시어머니의 병원비를 보탰다. 하루하루가 빠듯했기에 미래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4~5년 전부터는 형편이 좀 나아졌다. 큰딸은 취업했고, 남편도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했다. 황 씨의 수입도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전보단 늘었다. 그래서 늦게나마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황 씨는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라 기존에 가입한 연금만으론 노후 소득이 충분하지 않다”며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서 더 준비해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노후 준비는 선진국과 비교해 미흡한 수준이다. 핵심 노후 소득 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의 역사(1987년 도입)가 짧고, 퇴직연금과 주택연금도 2000년대 들어 시행돼서다. 이마저 의무가입 대상이 제한적이다. 나머진 자연스럽게 사각지대가 된다. 지역·임의가입도 가능하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 저소득층은 연금 대신 당장의 소득을 택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9~69세 노후 준비율은 31.3%에 불과했다. 50대와 60대가 각각 42.0%, 38.9%로 높았고, 20대 이하는 13.6%, 30대도 26.5%에 머물렀다. 직업별로는 서비스판매직(30.0%)과 기능노무직(29.8%), 가구 소득별로는 100만 원 미만(16.1%)과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24.9%)의 노후 준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20·30대는 국민연금 등 노후 소득 보장제도에 거부감이 크다. ‘플렉스(flex·사치품 과시)’, ‘빚투(빚내서 투자)’가 시대상이 됐듯, 최근의 20·30대는 불확실한 노후보단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국민연금기금 고갈론’, ‘300만 원 공무원연금’ 등 자극적인 표현들이 단편적으로 유통되면서 ‘가입해 봐야 손해’라는 인식이 퍼졌다. ‘국민연금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게재됐을 정도다. 사실 공무원연금은 2015년 개혁으로 수익비(낸 보험료 대비 받는 연금액 비율)가 국민연금(1.5배)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법률에 근거를 둔 국민연금은 적립금이 고갈돼도 정상 지급된다.

수도권에서 남편과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김소라(36·여·가명) 씨도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10년 가까이 체납하고 있다. 김 씨는 “집에든, 가게에든 쓸 돈은 점점 느는데 수입이 그만큼 늘어나는 건 아니므로 돈이 생겨도 연금보단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통장에 넣어놓게 되더라”며 “국민연금도 예전에 가입은 했지만, 보험료를 내봐야 늙었을 때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보험료를 안 내다 보니 1000만 원 가까이 밀린 상태”라고 말했다.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가치를 노후 준비보다 우선에 둔다는 것이다. 이는 노후 준비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별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노후 준비에 관심이 없다는 건 지나친 평가겠지만, 노후 준비를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노후 준비를 안 한다면 자산 취득이나 소비에 더 비중을 둬서일 것이고, 못 한다면 삶이 팍팍해서일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노후 준비에 관심이 없다고 단정할 순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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