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흔의 共有하기] 집 구하는데 "아이 몇 명"을 묻는 사회

입력 2020-10-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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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고백하건대 살면서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석사 학위를 흔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NGO)학으로 전공해 학문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또 올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것 정도였다. 당시에는 저런 법도 필요한가 생각했다.

최근 이사할 일이 생겨서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면서 당혹스러운 경험이 이어졌다. 만나는 공인중개사마다 아이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다음은 반려견 혹은 반려묘가 있느냐였다. 요즘엔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데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한번은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공교롭게 집을 세주려는 부부와 나란히 옆 테이블에 앉게 됐다. 그들은 앉자마자 대뜸 공인중개사에게 애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는 공인중개사에게 물었다. 애가 있으면 왜 안 되는지. 답은 간단했다. 집을 깨끗이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도 비슷했다. 어머니는 애가 많으면 싫다는 집주인 때문에 나를 이웃에 맡기고 누나 둘만 데리고 집을 보러 다녔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알고 보니 장모님도 애가 넷이라 집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무려 40년 전 얘기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올해 출생아 수는 7월까지 16만5730명으로 지난해 1~7월(18만3647명)보다 1만7917명(9.8%)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 출생아 수가 30만2676명이니 올해 30만 명대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이 올해 8월 발표한 2분기(4~6월) 전국 합계 출산율은 0.84명이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는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으로 2005년부터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만든 이후 5년마다 기본계획을 새로 만들고 있다. 현재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4차 계획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15년간 저출산 추세는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달 8일 제20차 목요 대화를 기념해 진행한 총리와의 대화 ‘무엇이든 물어보세균’에서 심각한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현재 출산율을 보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고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육아휴직이라든지, 경력단절여성 재취업이라든지 여러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지금까지는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다시 집 구하는 얘기로 돌아와서, 다행히 기자는 아직 애가 없다. 가는 공인중개사마다 환영 일색이다. 반려견ㆍ반려묘도 없으니 일등 세입자다. 그러나 애 있는 세입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애 있는 집을 차별하지 못하는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공인중개사와 어느 집을 보고 나왔다. 그 집에는 반려묘가 있었다. 나오면서 공인중개사가 객쩍은 한마디를 한다. “집주인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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