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휴게소 화장실 쓰는데 돈 낸다고?

입력 2020-10-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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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개통 초기 화장실 이용요금 10원
남ㆍ여 화장실만 덜렁 놓인 휴게소 대부분
경부선 중간 기점 추풍령 휴게소 인기
입구에서 목적지 말하고 통행권 받아야

1970년 7월,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고속도로가 생겼다. 부산시 금정구와 서울시 서초구를 잇는 이 고속도로는 구간별로 나눠 착공했다. 덕분에 2년 5개월 만에 뚝딱, 국토를 가르는 400㎞가 훌쩍 넘는 고속도로를 완공할 수 있었다. 고속국도 1호인 경부고속도로였다.

시작은 독일 아우토반에서 착안했다. 1960년대 말, '상업 차관'을 유치하기 위해 서독으로 날아간 박정희 대통령은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경험하고 깜짝 놀랐다. 귀국 직후 아우토반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발 빠르게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공사는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태국) 고속도로 경험이 있었던, 정주영 회장의 현대건설이 맡았다. 그렇게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고속화 도로가 생긴 지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 하루 고속도로 이용 차량만 400만 대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경부고속도로는 하루 평균 125만 대가 이용했다. 그동안 고속도로는 어떻게 변했고, 앞으로 어떤 고속도로가 나올까.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개통 초기 서울에서 신갈(현 수원ㆍ신갈나들목)까지 통행요금은 150원. 현재는 비슷한 거리인 용인IC 또는 동수원 IC까지 가려면 2000원을 내야 한다. 50년 새 약 13배가 오른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3월과 2020년 3월 사이 품목별 물가는 100배에서 많게는 800배가 차이 난다.

당시 휘발유 가격은 1리터에 약 27.5원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출발해 신갈나들목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휘발유 5리터에 달하는 통행료(약 7000원)를 냈다는 뜻이다. 다른 물가와 비교해보면 통행료가 그리 많이 인상된 것은 아닌 셈이다.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개통 초기 고속도로 안전순찰차다.

일본 토요타의 소형 트럭 에이스(ACE)의 수출형 부품을 그대로 들여와 당시 신진자동차가 조립했다. 그래서 이름도 '신진 에이스'였다.

당시 자동차에는 에어컨조차 사치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좌우 전조등 사이를 작은 팝업 도어가 달려있다. 뜨거운 여름, 이 작은 문을 열면 차 앞에서 자연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고는 했다.

요즘 안전순찰차에는 다양한 장비가 장착돼 있으나 당시는 도로 위 '낙하물 수거' 정도가 주 업무였다.

오늘날 상용차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개통 초기 경부고속도로 안전순찰차는 당시 기준으로 첨단이었다.

1970년대 국내 소형 트럭은 '기아 마스타'가 생산했던, 바퀴가 3개만 달린 이른바 '삼륜차'가 대세였다. 이와 달리 경부고속도로 안전순찰차는 '고속'이라는 주행 환경을 고려해 바퀴가 4개나 달린 신진 에이스 트럭을 썼다.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1970년대 고속도로 요금 납부 방식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출발하는 요금소에서 목적지가 적힌 통행권을 미리 발급받았다. 물론 통행요금도 이때 모두 내야 했다.

출발하는 나들목에 들어서 목적지를 말하고 해당 구간의 통행권을 발급받는 방식이었다. 애초에 정했던 목적지보다 더 달리면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미리 빠져나온다고 환급은 없었다. 구간별로 통행권의 색깔을 달리한 점도 독특하다.

차 앞 유리 오른쪽 위에 붙어있는 동그란 스티커도 재밌다. 이는 자동차 세금을 냈다는 과세 표다. 요즘과 달리 분기마다 자동차 세금을 냈는데 은행에 차 세금을 내면 이런 동그란 모양의 과세 표를 줬다. 이를 차 앞 유리에 항상 부착하고 다녀야 했다.

분기별로 과표의 색깔도 달랐다. 커다란 숫자까지 표시해 둬 세금을 내지 않고 운행하는 차들을 단속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발급했던 구간 통행권은 1991년 현재의 마그네틱 방식의 통행권이 시범 도입되면서 사라졌다. 고속도로 입구부터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원하는 출구로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시스템도 이때 시작했다.

사진 아래는 마그네틱 통행권 발급 직전까지 사용했던 구간통행권 모습.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개통 초기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습이다.

요즘 같은 첨단 시설은커녕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만 있었다. 최근 고속도로 휴게소는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반세기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오로지 급한 용무를 해결하는 게 전부였다.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없었고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휴게소 담장 밖에 자리한 식당과 매점도 눈길을 끈다. 매점 주인들은 휴게소 담장 한편에 고의로 구멍을 냈다. 휴게소에 들른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요즘으로 따지면 마케팅이었다.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1970년대 당시 기준 가장 화려했던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의 모습이다.

이 휴게소는 개통 당시 경부고속도로 총연장 416㎞ 구간 가운데 중간 기점에 자리했다. 상행선과 하행선에 각각 자리한 휴게소는 많은 이들에게 꿀맛 같은 쉼터였다. "구름마저 쉬어간다"라는 표현도 이 무렵 등장했다.

2006년, 대구에서 부산을 직선으로 연결한 '대구-부산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기존의 노선은 하나의 지선으로 바뀌었다.

대구에서 포항과 울산, 양산 등을 거치지 않고 곧장 부산으로 진입하다 보니 현재 서울-부산 고속도로의 최단 거리는 약 320㎞로 줄었다.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 초기 일부 현대식 화장실은 시설이용 요금을 받았다. 당시 기준으로 10원이다.

최근에는 매년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시설과 관리가 가장 뛰어난 곳을 뽑아 '아름다운 화장실' 시상까지 한다. 편의 장비는 물론 청결과 관리도 수준급으로 거듭났다.

물론 현재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이용 요금을 받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사진제공=한국도로공사)

1970년대 고속도로가 등장하면서 우리에게도 고속버스 문화가 생겼다.

당시 고속버스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운송 수단이었다. 그만큼, 승객의 편의를 돕는 승무 사원도 항상 탑승했다. '안내양'이었다. 그녀들은 요즘 항공사 스튜어디스에 버금가는 인기도 누렸다.

당시 고속버스와 대형 화물차는 하나의 엔진과 프레임을 공유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껑충한 버스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차 높이를 낮췄다.

최고급 고속버스조차 실내 천장이 무척 낮았다. 보통 성인 남성도 버스 안에서 이동할 때는 머리를 숙이고 걸어야 했다.

그래도 불편함을 몰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만에 달린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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