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빈곤 보고서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늙으니 가난해져 있어”

입력 2020-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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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 이바지했지만 늘 저임금·고용 불안 시달려…노인 절반 이상 노후 준비 안 돼

▲김복자(69·여·가명) 씨는 추석 연휴에도 집 근처 도로에 나와 나물을 팔았다. 사진은 김 씨의 노점 옆 상인이 자리를 비운 과일 노점. 윤기쁨 기자 modest12@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김복자(69·여·가명) 씨는 고구마순 보따리를 챙겨 거리로 나갔다. 먹고살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 경기 성남시에서 홀로 사는 김 씨는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노점을 차리고 나물을 판다.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다. 큼지막하게 ‘3000원’이라고 적은 종이를 붙여놨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는 김 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백수인 마흔 살 아들과 이혼한 딸도 형편이 어려워 김 씨를 돕진 못한다.

김 씨가 가난해진 건 게을러서도, 열심히 살지 않아서도 아니다. 젊어선 식당일 등을 했고, 나이가 늘어선 나물을 팔았다. 노점 생활도 어느덧 10년째다. 그러면서 홀로 두 남매를 키웠다. 김 씨에게 가난은 ‘게으름의 대가’가 아닌 ‘희생의 대가’다.

생계급여 수급자인 이명환(가명·70대) 할아버지도 평생을 공사판에서 살았다. 일용직 신세를 한탄하며 결혼도 포기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이 할아버지의 몸은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망가졌다. 배우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고독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주민센터 직원이 추천해준 독거노인 돌봄서비스를 신청했다”며 “가난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어가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2020 고령자통계’를 보면, 지난해 노후를 준비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노인(65세 이상)은 전체 노인의 48.6%에 불과했다. 그나마 저소득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는 8월 기준으로 평균 42만2000원이다. 월세와 쌀값을 내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빈곤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겪는 보편적인 문제 중 하나다. 2018년 기준 66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은 43.4%로 18~65세(11.8%)의 4배에 육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가장 높았다. 66세 이상도 연령대별로 상황이 다르다.1960~1970년대 경제활동을 시작한 70대 이상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첫 일자리의 근로조건이 열악해 경제 호황기인 1980~1990년대에도 ‘질 좋은’ 일자리로 옮겨가지 못했다. 수십 년간 경제·사회 밑바닥에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지만, 늘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꿨다.

특히 70대 이상은 부모와 자녀를 함께 부양했지만, 1990년대 이후 핵가족화로 정작 자신들은 자녀로부터 부양받지 못했다. 통계청의 ‘2019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전체 가구 중 3대가 모여 사는 가구의 비중은 2000년 6.8%에서 2018년 3.7%로 반토막 났다.

이 할아버지는 “평생을 일만 했는데, 돈이란 게 내겐 모래알처럼 들어오는 순간 흩어지더라”며 “결혼도, 자식도 포기하며 일생을 공사판에 바친 인생이 덧없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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