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동산 규제 태풍 이후

지난달 중순부터 이번 달까지 한 번도 편한 날이 없었다. 코로나19에 이어 장마와 태풍까지 그야말로 삼중고였다.

1988년생인 기자에게 인생 최대의 태풍은 2003년 ‘매미’였다. 매미는 부산과 경남 일대를 강타했고 4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냈다. 경남 중소도시에 살았던 기자는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매미가 지나간 다음 날 맞은편 아파트 몇 가구의 베란다 창문이 통째로 뜯겨나간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올해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올라오자 뉴스에선 연신 2003년 태풍 ‘매미’를 외쳤다. 태풍을 뚫고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매미’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떠올라 불안했다. 다행히 마이삭은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반도를 지나갔다. 하지만, 옛 기억이 떠올라 유독 불안했다.

올 여름 장마와 태풍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동안 부동산 시장에도 ‘규제 태풍’이 몰아쳤다. 대출규제와 보유세 강화, 규제지역 확대, 3기 신도시 청약 계획 조기 발표 등이 연달아 쏟아졌다. 모두 수도권 집값 급등세를 막기 위한 극약 처방들이었다. 하지만 이 태풍이 부동산시장에 상륙해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까 걱정이다.

‘과거 3차례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는 모두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고, 주택 공급이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 전개와 결과를 되짚어보기 위해 발간한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의 한 부분이다. 2020년 청와대에서 작성한 보고서의 첫 문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 만든 보고서의 내용인 만큼 현 정권도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답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공급 확대’라는 해결책을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약하게 내놨다.

태풍 매미 이후로 수해 방재시스템이 대폭 개선됐다. 이번 태풍 마이삭이 똑같은 경로를 지나갔지만 피해가 약한 이유 중 하나다. 집값 급등 대응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집값 급등이라는 재해가 지나가길 바라는 상황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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