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과 트렌드] 작은 이야기도 가치를 지닌다…크라우드 펀딩서 주목받는 ‘작은 이야기’ 트렌드

입력 2020-09-08 17:02수정 2020-09-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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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크라우드 펀딩(Cloud funding).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가장 최신의 소비·문화 트렌드를 잘 보여줍니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고자 합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은 작은 이야기가 성장하기 가장 좋은 플랫폼이다. 2018년 한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역시 텀블벅에서 처음 시작됐다. 3년이나 지난 지금도 한 사람의 삶에 귀 기울이는 '작은 이야기' 트렌드는 계속되고 있다. 그중 올해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눈에 띄고 주목할만한 작은 이야기 프로젝트를 모았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는 주제별로 3권의 분권으로 구성됐다. 한 권에 저자 2명의 에세이와 총 4명의 인터뷰 글을 담았다. (사진제공=진저티프로젝트)

텀블벅의 문학·에세이 카테고리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로젝트는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다. 9일 0시 마감을 앞두고 8일 오후 3시 현재 목표 금액의 522%(1044만5000원)를 모았다. 책은 '여성과 일'을 주제로 대학생이 인생 선배들과 나눈 대화를 담았다. '나만의 독립적인 삶과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될 수 있나요?', '나의 일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주제별로 3권으로 나눠 구성됐다.

제목을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로 지은 건 인생 선배의 답이 정답 같은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됐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진저티프로젝트 전혜영 팀장은 "처음 기획 때와 달리, 인터뷰를 진행하며 '나의 일'고민에 딱 맞는 롤모델 찾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며 "20대 초반의 대학생 6명은 '저자'가 되었고 12명의 인터뷰이는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레퍼런스'가 됐다"고 전했다.

▲'인생사진없는 인생여행기'의 표지. 작가 해영은 지나친 보여주기식 여행에 회의감을 느끼고 나다운 여행책을 내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 (사진제공=해영)

텀블벅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인생사진없는 인생여행기'다. 펀딩 마감까지 5일을 남겨둔 8일 현재 목표 금액의 221%(124만4777원)를 달성했다. 책에는 20대의 3분의 1은 한국이 아닌 29개국에서 보냈던 해영 작가의 여행 이야기가 담겼다. SNS에 자랑할만한 사진 대신 '나다운 여행' 이야기책을 목표로 했다.

▲해영 작가가 호주에서 자동차 사고를 겪었을 때 사진. 자세한 사고 이야기는 '인생사진없는 인생여행기'속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제공=해영)

책에 담긴 이야기는 화려하기보다 주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다. 그중 하나는 호주에서 겪은 자동차 사고다. 운전 경험이 없던 해영 작가는 호주에서 처음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다 사고를 겪었다. 해영 작가는 "그 후 운전대를 잡지 않을 정도로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책에는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인칭일기' 표지. 인칭일기는 54년생부터 39년생 사이의 어르신 9명이 참여했다. (사진제공=서울노인복지센터 )

역동적이고 다양한 삶을 사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있다. 올해 초 와디즈에서 목표 금액 123%(246만1114원)를 달성한 '노인1인칭이 세상의 3인칭에게 : 인칭일기'다. 프로젝트 이름은 '노인 스스로 1인칭 주인공이 돼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의 많은 3인칭과 만남'을 뜻한다.

프로젝트는 노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그리는 미디어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됐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장혜영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제작하려 의뢰하는데, 쪽진 할머니와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를 그렸다"며 "복지센터에서 매일 만나는 2000여 명의 어르신 중에서 이런 모습을 하신 분도 있지만, 그 모습이 다는 아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인칭일기'에 참여자 소개 사진. 장혜영 사회복지사는 "(예명은) 나이·성별·학력·이름에서 오는 편견을 없애고 온전히 ‘나’로서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작은 장치"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서울노인복지센터)

인칭일기에 참여하는 모든 어르신 모두 '홍시', '소나무' 같은 예명을 지었다. 남이 지은 별명이 아닌 스스로 지은 예명이다. 책의 마지막 두 페이지는 ‘당신이 꿈꾸는 노년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후원자들의 답변으로 채웠다. 장혜영 사회복지사는 "노인 1인칭의 이야기와 3인칭의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또 다른 만남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밝혔다.

▲'어바웃 DMZ'의 표지. DMZ를 단순 홍보하기보다 DMZ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전하고자 했다. (사진제공=올어바웃)

지역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DMZ 접경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ABOUT DMZ'(어바웃 DMZ)다. 올해 봄 네이버 해피빈에서 목표 금액 140%(70만1400원)를 달성했다. 군사나 전쟁, 평화 이야기가 아닌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올어바웃'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지역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 탄생했다. 올어바웃은 "이야기로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야기로 지역을 브랜딩한다.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은 경험이다. 직접 먹고, 자고, 즐기며 숨어있는 장소와 사람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이야기별로 적합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한 책자에서도 인터뷰·체험기·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굿즈 역시 이야기를 담는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DMZ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철원이었다. 지역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철원을 '액티브'(Active·활동적인) 철원으로 명명했다. 올어바웃 측은 "한탄강 래프팅, 얼음트래킹, 탐조 등 철원에는 역동적인 활동이 많다"며 그중에서도 철원의 액티브함을 만들어내는 건 지역 주민"이라고 강조했다.

▲'어바웃 DMZ' 첫번째 프로젝트 '액티브철원'의 엽서다.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월정리역, 오대쌀, 철원 평야의 철새를 표현했다. (사진제공=올어바웃)

앞서 소개한 프로젝트 모두 '남과 다른 시선'과 '나다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정답 같은 롤모델보다 자신만의 길을 위한 레퍼런스를 발견하고, 화려한 여행 사진보다 자신만의 여행 이야기에 집중했다. 또 노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며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고, 모두가 서울의 집값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지역에 귀를 기울인다.

해영 작가는 인터뷰 중 핑크 펭귄 이야기를 하며 '남과 다른 시선'과 '나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핑크 펭귄'이라는 책을 보고 느낀 것이 있는데, 나는 일평생 (화려하고 눈에 띄는) 핑크 펭귄이 될 수 없겠더라. 하지만 화려한 여행자들이 넘치다 보면 정작 그냥 펭귄이자 평범한 여행자인 내가 돋보이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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