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의 직장’ 공공기관, 임원 퇴직금 늘리려다 그만….

입력 2020-08-31 14:52수정 2020-08-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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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탁결제원ㆍ한국주택금융공사ㆍ기술보증기금, 코로나 시국에 임원 퇴직금 불리기 시도

▲한국예탁결제원 상임 임원 평균 연봉 현황. (이투데이DB)

공공기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공공기관들의 행보는 국민 이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예탁결제원ㆍ한국주택금융공사ㆍ기술보증기금 등 공기업들이 ‘임원퇴직급여지급기준’ 등을 개정해 ‘돈잔치’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원칙상 퇴직급여제도 운영 대상은 ‘임원’이 아닌 ‘직원’인데도 공공기관들이 임원 ‘밥그릇’ 챙기기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 공공기관 중 몇 곳은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할 경우 임원은 빼라. 직원 대상으로 하라”는 기획재정부의 권고에도 복지부동이다.

◇임원 퇴직금부터 챙긴 예탁원… 기재부 권고 수용

31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3월 한국예탁결제원은 임원의 퇴직금 산정 기준에 ‘성과급’을 포함하는 임원퇴직급여지급 기준안을 개정했다. 기본연봉의 월 평균치를 근거로 해 주던 것을 성과급까지 포함했다.

지난해 보수를 근거로 단순 계산하면 퇴직금이 지금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다. 지난해 예탁원의 상임이사 평균보수는 3억1342만 원. 이 가운데 기본급은 1억6484만 원, 성과상여금은 1억4789만 원이다. 예탁원은 공공기관 중에서 고연봉을 받는 대표적인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

예탁원은 지난 6월 기재부가 ‘임원’ 퇴직금에는 성과급을 반영하지 말라는 권고를 내리자 변경 전 규정으로 원상 복귀할 예정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임원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하는 규정은 추후 주주총회에서 되돌릴 예정”이라며 “현재 규정 기준으로 퇴직금을 받은 임원은 아직 없으며 임기 등을 고려했을 때도 적용 대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직원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직원은 제외하고 임원들의 퇴직금 규정만 바꾼 사실에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퇴직급여제도, ‘직원’ 대상이 원칙”… 기재부 “임원 빼라”

공공기관 임원들의 퇴직금 불리기는 예탁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한국주택금융공사는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에 경영평가성과급을 분할 계산해 합산하도록 수정했다. 기술보증기금 역시 5월 퇴직금에 성과급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공공기관은 매년 경영평가 결과에 성과급이 따라 달라진다는 이유로 퇴직금에 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말 대법원이 “성과급은 평균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공공기관도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기재부는 ‘2020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서 “경영평가 성과급은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또한 고용부는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하라는 내용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성과급 관련 퇴직급여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을 지난달 3일 마련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근로자(직원) 퇴직금에 성과급을 반영하라는 맥락인데도 예탁원 같은 일부 기관이 임원 대상으로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재부가 임원은 빼라고 권고를 내린 이유다. 기재부 관계자는 “임원은 퇴직급여법에 따른 퇴직급 지급 대상이 아니다”며 “임원들은 경영성과급이 보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를 퇴직급여에 산입하게 되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예산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가급적 자제하라는 취지로 권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법인 창무 홍서원 노무사는 퇴직급여 대해 “근로자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른 정해진 퇴직금 산정기준을 따르지만, 임원인 경우 정관 또는 주주총회에서 정한 퇴직급여지급규정에 따라 그 액수가 결정된다”며 “최근 하달된 고용부의 공공기관 퇴직급여 지침 적용 대상에 임원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권고 강제성 없어… 페널티 부여 등 실효성 높일 방안 필요”

기재부가 공공기관의 임원 퇴직금 늘리기에 제동을 걸었지만 권고의 실효성이 더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권고의 경우 공공기관의 자율성에 맡겨야 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이번 기재부에서 내린 권고는 강제성이 없다 보니 기관들이 유불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채택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임원의 성과급을 퇴직금에 넣는 것은 위법이 아니지만, 기재부가 정책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내린 권고 사항”이라며 “기재부가 권고 하달에 그칠 것이 아니라 권고를 미준수한 곳에 경영평가 페널티를 부여하는 등 관련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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