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없는 디지털금융]“앱이 애먹여” 진땀…‘손안의 뱅킹’ 노년층엔 남일

입력 2020-08-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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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어르신에게 기능 설명에만 1시간 훌쩍…영업점 빠르게 줄어드는데 소외계층 대책은 없어

▲60대 김효은 씨가 모바일뱅킹에 가입하면서 메모해 둔 내용. (사진=김범근 기자 nova@)
모바일뱅킹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다는 김효은(61) 씨에게 기자가 직접 사용법을 알려줬다. 평소 스마트폰을 통해 웹서핑이나 유튜브를 시청하지만 모바일뱅킹의 벽은 높았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주거래 은행 앱을 받고 가입을 시도했다. 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는 것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메일을 사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노년층은 모바일뱅킹 가입 첫 단계부터 좌절을 맞보고 포기할 게 분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입에 성공했다. 숫자와 패턴으로 비밀번호를 설정했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김 씨는 노트에 간편하게 이용하기 위해 설정한 비밀번호 패턴을 일일이 그려 넣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체’ 기능을 이해시키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체 기능을 누르고 보내는 은행과 금액을 눌러 보라고 했다. 계좌는 ‘-’ 없이 누른다고 구두로 설명하자 그대로 노트에 적었다. 금액을 앱 안에서 써 넣는다는 단순한 내용도 김 씨에게는 생소했다. ‘숫자 0원 있는 곳을 누름’이라고 쓴 뒤 재차 금액을 눌러 보았다. 받는 사람의 이름이 확실한지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계좌번호를 수정한 뒤 받는 사람을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김 씨는 ‘꼭 맞는지 확인함, 그리고 모두 닫기 누름’이라고 메모했다. 가입부터 기본적인 이체 기능을 설명하는 데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시각장애인용 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을 이용하거나 스마트폰의 기능에 의지해야 한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은행업 특성상 도움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만난 시각장애인 대다수는 모바일뱅킹 서비스 사용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렵게 사용자를 찾았지만,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익명을 요청한 시각장애인 하모(37) 씨는 “가장 큰 문제는 업데이트가 되면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음성으로 안 읽어주거나 메뉴가 조금씩 바뀐다”며 “기껏 (사용법) 다 익혔는데 다시 익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여러 은행을 쓰는데 은행마다 앱이 달라 접근성이 다르다 보니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고 업데이트 때마다 오작동률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박모(41)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바일뱅킹을 핸드폰 자체에서 음성으로 안내하는데 너무 속도가 빨라서 따라가기 어렵다”면서 “링크 하나만 잘못 눌러도 이전화면이나 다른 페이지로 이동해서 실수가 잦은데 그러다 계좌가 일시 정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 영업점 통폐합 속도, 창구만 찾는 디지털 소외계층 불편 증가 = 기자가 만난 노년층 시각장애인들 대부분 모바일뱅킹 사용을 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공통된 점이 은행이 더 편해서 영업점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노년층들은 대부분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업무를 볼 수 있어 복잡한 모바일뱅킹 서비스 대신 창구를 찾는다. 은행 점포가 없어지면 불편할 거 같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은행들이 영업점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수익 강화를 위해 영업점 통폐합에 나서는 것이 노년층과 시각장애인 같은 디지털 소외계층에는 큰 불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2년 7681개였던 4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영업점포는 지난해 6710개로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총 126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지난해 전체 88곳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하반기에도 총 40개 지점의 문을 추가로 닫을 예정이다.

◇ 윤석헌 금감원장 ‘경고’에 시중은행 정책 바뀔까 =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올리던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당국이 문 닫는 점포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기 때문. 윤 원장은 지난달 22일 임원회의에서 은행권의 영업점 감축 움직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윤 원장은 “코로나19 영향, 순이자마진 하락에 따른 비용절감 노력 등으로 점포 폐쇄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코로나19를 이유로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 수를 감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업을 둘러싼 환경을 고려할 때 영업점을 축소하는 디지털전환(DT) 위주의 전략은 필연적이라는 시각이다. 최근 코로나19로 고객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비대면 영업은 더 확대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모바일·인터넷뱅킹 이용 비중은 59.3%를 차지했다. 반면 은행 창구 비중은 8.8%에서 7.9%까지 떨어졌다. 내방고객 수가 줄어들면서 높은 임차료와 인건비가 들어가는 고비용 점포를 계속 운영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초저금리와 각종 대출 규제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고비용 비효율 점포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고령층 금융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함께 고민하고 있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60대 김효은 씨가 모바일뱅킹에 가입하면서 메모해 둔 내용. (사진=김범근 기자 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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