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불황의 역설…경차가 잘 팔린다고?

입력 2020-08-03 16:00수정 2020-08-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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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속 경차 판매 13년래 최저…외환위기ㆍ리먼쇼크 땐 경차가 호황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자동차 산업에는 한때 ‘경차 지수’가 존재했다. 특정 기간 경차의 판매량을 두고 자동차 산업, 나아가 나라 경제의 위축과 회복기를 가름하기도 했다.

‘미니스커트 유행'이 경기불황의 신호로 여겨지던 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경차가 잘 팔린다”는 속설마저 등장했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속설에 그칠 때가 많았다.

◇불황 때마다 경차는 톡톡히 효자 노릇=통계청은 “경기불황과 미니스커트 유행은 단순한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를 갖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미니스커트는 그냥 유행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러나 경기불황(원인)과 경차판매 상승(결과)의 인과관계는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먼저 △원인과 결과의 상호 연관성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 발생 △다른 변수(전체 차 판매)를 제거한 상태에서 원인만으로도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

실제 판매 통계를 보면 이런 인과관계가 더 설득력을 얻는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 쇼크 때 경차 판매가 급상승한 사례가 존재한다.

그러나 2020년은 사정이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서 국내 경기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내수 자동차 판매가 전년 대비 상승했음에도 경차 판매는 크게 감소했다. 상반기 기준, 2007년 이후 최저치다.

▲경차는 뛰어난 연비와 저렴한 유지비를 바탕으로 불황 때마다 큰 인기를 누렸다. 사진 왼쪽이 국내 최초의 경차인 대우국민차 티코, 오른쪽이 3세대로 거듭난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2017년형)의 모습. (사진제공=쉐보레)

◇대우조선에서 시작한 국내 경차 역사=우리나라 경차 역사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조선공업 자동차사업부는 대우자동차와 별개로 창원공장에서 배기량 800㏄ 미만의 초소형 자동차 생산에 나선다. 본격적인 생산을 앞두고 '대우국민차'도 출범했다. 마침내 경차 만들기 노하우가 가득했던, 일본 스즈키의 ‘알토’를 들여와 ‘티코’를 출시했다.

티코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980년대 말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고, 티코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십분 활용했다.

이후 현대차와 기아차 역시 아토스와 비스토 등을 각각 내놓으며 대우국민차의 독주를 견제했다. 경쟁은 다마스와 라보, 타우너(기아차) 등 경상용차까지 확산했다.

2008년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국내 경차 규격은 배기량이 1000㏄로 상향 조정됐다. 엔진이 커지면서 성능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밖에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규격도 새로 맞췄다.

▲1995년형 슈퍼 티코. 원톤이었던 차체를 투-톤 컬러로 포장하고 일부 편의장비를 추가하며 경차 시장 확대에 대응했다. (출처=광고연구원)

◇IMF 당시 경차 점유율 25% 육박=경차는 경기 위축 때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인기를 누렸다.

IMF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1997년 상반기 경차 판매는 4만2182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본격화된 이듬해(1998년) 상반기 판매는 전년 대비 104.5% 증가한 8만6054대에 달했다.

외환위기 탓에 원ㆍ달러 환율이 2000원 까지 치솟자 고유가 시대가 본격화했고, 연비 좋은 경차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경기까지 확산한 2008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부실담보 탓에 주요 은행이 통폐합되면서 경기 전반이 크게 위축됐다. 중소ㆍ중견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 등이 잇따랐고, 실직과 임금 동결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결국, 값싸고 유지비가 저렴한 경차가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2007년 상반기 4만4670대에 그쳤던 경차 판매는 리먼 쇼크가 본격화한 2008년 상반기 8만4399대까지 치솟았다. 무려 88.9% 증가한 규모였다.

◇2020년, '불황=경차 인기' 등식이 깨져 =이처럼 경기 위축기 때마다 잘 팔렸던 경차의 인기가 이제 시들해졌다.

2월부터 국내에 본격화한 코로나19 사태는 급격한 경기 위축을 불러왔다. 이동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본격화되면서 소비가 감소했고 경기 지표도 빠르게 하락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7일 발표한 <그린북>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고용 감소 폭이 축소되고 내수 관련 지표의 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나,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수요 위축 등으로 수출 및 생산 감소세가 지속하는 등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6월에는 “실물경제 하방 위험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던 반면, 수출과 생산 내림세가 멈추지 않자 7월에는 “불확실성이 높다”라고 판단을 바꿨다.

이처럼 경기 위축기가 극심했던 상반기, 경차 판매는 오히려 2007년 이후 최저치에 머물렀다.

국내 경차 판매는 차 높이를 끌어올리고, 공간 활용성을 개선한 기아차 레이가 등장했던 2012년 상반기 11만3702대가 팔리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판매는 지속해서 하락했다. 올 상반기 기준 5만99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단순하게 판매가 줄어든 것은 물론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하락했다.

▲경차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연비와 저렴한 유지비다. 사진은 1리터당 21.2km를 기록한 2010년형 기아차 모닝. (사진제공=기아차)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상반기 경차 판매(8만6054대)는 전체 자동차 판매(36만1454대)의 23.8%에 달했다. 그러나 이 비율은 2008년 상반기 기준 13.6%로 하락했다.

올 상반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과 함께 자동차 내수촉진 정책이 확산하면서 경차의 시장 점유율이 6.3%에 그쳤다. 사실상 니치(Niche) 마켓이 됐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SUV가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면서 주요 완성차 메이커들이 승용차 생산을 축소하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등 전략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라며 “이제 준대형 세단(현대차 그랜저)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장인 만큼, 단순한 경제논리로 차 시장을 분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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