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분열된 집은 결국 쓰러진다

입력 2020-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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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지난주 미국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참수형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우뚝 세워져 있던 콜럼버스의 동상은 목에 밧줄이 걸린 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거나 머리가 댕강 잘려 바닥에 나뒹굴거나 온몸에 페인트 칠갑을 하고 물속에 처박히는 등 마치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하는 대역 죄인 같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자 그에 대한 분노가 흑인 차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종별 차별 문제로 촘촘하게 확산하는 분위기다.

콜럼버스 참수에 앞장선 이들은 인디언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15세기 미 대륙에 들어온 콜럼버스가 선조들을 대량 학살했다며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날(10월 둘째 주 월요일)’에 대해서도 잔인한 폭력을 인정하는 모순이라고 반발해왔다. 이번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내건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거세지자 인디언 원주민들도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가 인종별 항의 시위가 불붙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럴 것 같진 않다. 미국은 인종 구성비상 백인 비율이 약 70%로 압도적인 데다 그 외는 워낙 소수여서 한목소리를 낸들 먹혀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인종·다민족·다문화 국가인 미국의 한계이자 상존하는 과제다. ‘용광로’처럼 다양한 인종이 주류 문화에 녹아들어 살면 좋겠지만, ‘샐러드볼’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런 특수한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특정 인종이 자신들에 대해 우월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운 침략의 역사 속에서 한때는 백인 간에도 서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시절이 있었고, 전쟁을 통해 자유 독립을 쟁취한 역사를 잊은 건 아닐까. 매년 7월 4일(독립기념일)이 무슨 날인지 상기해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종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어필하며 백인 보수층을 결집시키려 한다. 하지만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장갑차와 전투헬기 동원 등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는 그의 무리수는 사회의 분열만 부채질할 뿐이다. 대권 4년 더 잡자고 영원히 존속해야 할 나라를 분열시키는 건 하수 중의 하수적인 발상이다.

‘노예 해방의 아버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랬다. “스스로 분열된 집은 설 수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고. 그는 “반은 노예로, 나머지 절반은 자유롭게 사는 나라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며 당시 노예제 문제를 직시했다. 링컨은 미국 최초의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노예제를 유지하자는 남부 기반의 정당이었고, 공화당은 노예제 확장에 반대하는 북부 기반 정당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 소속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사회의 왜곡을 정면으로 마주하려 들지 않고 있다. ‘내 편’만 데리고 나라를 이끌겠다는 치졸한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과 백인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인종 간 갈등의 골이 더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충성파로 이름났던 보수 성향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까지 “도널드 트럼프는 내 생애에서 국민의 융화를 도모하려 하지 않는, 도모하는 척조차 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다. 오히려 우리를 분단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을까.

분열의 리더십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내부가 분열된 상태에선 아주 작은 외풍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재임 3년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세계를 갈가리 찢어놓더니, 결국엔 자기 집 내부를 콩가루로 만들고 있는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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