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상대 평가와 객관적인 비교 기준…제도와 규정 따라 숫자도 제각각
자동차 안에는 성능과 안전, 나아가 제도와 법규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숫자가 담겨있다.
이런 숫자는 곧 상대적인 평가와 객관적인 비교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한 연구개발진의 노력도 담겨 있다.
우리가 간과해온, 자동차 안에 담긴 다양한 숫자의 비밀을 파헤쳐보자.
◇비슷비슷했던 안전띠, 이유 있었네=자동차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에어백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안전장비는 시트벨트다.
내 몸과 맞닿은 시트벨트에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숫자가 존재한다. 바로 벨트 폭 4.5㎝다.
안전띠 폭이 4.5㎝보다 좁으면 충돌사고 때 운전자 또는 동승자의 부상이 커진다. 반대로 벨트 폭이 5㎝를 넘어서면 재질에 따라 벨트가 꼬이거나 착용 때 불편해진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얻어낸 벨트의 너비가 4.5㎝다. 반복된 안전성 검사와 실차 시험을 통해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생산된 민간 항공기 역시 같은 기준의 시트벨트를 장착 중이다.
◇차 높이 1400㎜의 비밀=국내에서 제법 잘 달린다는 차들의 높이는 신기하게도 1400㎜다.
차 높이가 낮은 차는 그만큼 스포츠 성을 강조한 차들이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사고율이 높아지기 마련. 그 때문에 보험개발원에서는 차 높이 1400㎜를 기준으로 스포츠카를 규정한다. 이 기준에 포함되면 보험 요율도 크게 오른다.
기아차의 고성능 GT인 스팅어, 현대차의 벨로스터 등이 공식 제원상 차 높이를 1400㎜에 맞춘 것도 이런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수출은 모두 제원상 차 높이가 1400㎜보다 낮다. 차 높이로 스포츠카를 규정짓는, 모호한 기준이 수출현장에는 없기 때문이다.
제조사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모닝도 레이도, 스파크도 모두 차 길이는 3.6m=국내 경차 기준에는 엔진 배기량 이외에 자동차의 길이도 존재한다.
한때 엔진 배기량 800cc였던 경차 엔진 배기량 기준은 이제 1000cc로 완화됐다.
이처럼 차 길이도 규정돼 있는데 그 기준이 3600㎜다. 기아차 모닝과 레이, 쉐보레 스파크 모두 공식 제원상 차 길이는 3590㎜ 안팎이다.
반면 수출형은 사정이 다르다. 쉐보레 스파크의 경우 수출형 차의 제원에는 차 길이가 3650㎜로 돼 있다. 역시 제조사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 존재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타이어에도 유통 기한이 있었네=잘 살펴보면 자동차 타이어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타이어는 일정 시일이 지나면 특성상 고무가 딱딱해지는, 이른바 경화가 시작된다. 이 경우 노면과 접지력이 떨어지고 이상 기후 때 타이어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타이어 제조사에서는 출고 이후 3~4년이 지난 타이어는 유통을 중단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타이어를 못 쓰지는 않는다. 다만 통상 타이어를 사고 2~3년을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해 내놓은 자체 품질규정이다. 6년이 지날 때부터 경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결국, 제조 일자가 타이어를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제조 시기는 타이어 옆면에 나와 있다. 여러 숫자 가운데 독립적으로 표기된 4자리 숫자가 제조연월일이다. 앞 두 자리 숫자가 출고 주차, 뒤에 붙은 두 자리 숫자가 생산연도다. 예컨대 ‘1920’이라고 적혀있다면 2020년 19주차 생산분 타이어라는 뜻이다.
◇메이커별 타이어 크기는 다르다?=맞다. 같은 치수의 타이어라도 실제로 나란히 비교해보면 제조사별로 크기가 다르다.
타이어 옆면에는 노면과 맞닿은 △폭(mm)과 △사이드 월의 높이, 나아가 △휠의 지름 등이 표기돼 있다. 타이어를 교체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숫자이기도 하다.
신기한 점은 같은 치수의 타이어도 제조사별로 크기가 제각각이라는 것. 이런 격차는 타이어가 커질수록, 즉 상용차로 갈수록 더 커진다. 휠 사이즈(직경, 인치)를 제외하고 폭과 옆면의 높이가 제각각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타이어를 교체할 때 가능하면 같은 제조사의 타이어로 교체하기를 권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서려 있다.
“그래 봐야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고 말한다면 오산이다. 풀타임 네바퀴굴림 자동차의 경우 타이어의 미세한 크기(접지 면적 및 지름) 차이가 자칫 변속기와 차동장치에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
◇유리창에도 담긴 재미난 숫자들=자동차 유리창 구석에는 깨알만 한 글씨로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제조사 엠블럼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특정 수출지역의 안전기준을 통과했다는 인증 마크다.
나아가 △템퍼드(tempered)는 강화유리 △라미네이티드(laminated)는 접합유리를 뜻하고 △어쿠스틱(acoustic) 표시가 돼 있다면 차음유리를 뜻한다.
유리창의 두께도 쓰여 있다. 예컨대 3.5T와 4.5T라고 쓰여 있다면 유리 두께가 3.5㎜ 또는 4.5㎜라는 뜻이다. 이밖에 △AS1은 앞 유리 △AS2는 뒷유리 △AS3는 선루프를 의미한다.
중고차를 구입할 때 이처럼 유리에 새겨진 숫자와 기호를 살피는 것도 사고차를 가려내는 좋은 방법이다. 특정 유리만 기호가 다르다면 교체됐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차인데 왜 수출형은 최고출력이 다른가요?=흔히 엔진 출력을 마력(馬力)으로 표시한다.
이런 마력은 국가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HP(horse power) 마력을 쓰는 반면, 유럽은 PS 마력을 쓴다.
1PS 마력은 0.986 Hp 마력과 같다. 즉 유럽에서 100마력(ps)인 자동차가 미국으로 넘어가면 98.6마력(hp)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닌, 유럽과 같은 ps 마력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최고출력을 100마력이라고 발표했다. 이 차가 우리나라에 수입되면 102마력이 된다.
거꾸로 똑같은 엔진을 얹은 국산차가 미국에 수출되면 출력이 소폭 줄어들기도 한다.
한편 국산차를 유럽에 수출할 때 최고출력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배기량이 세금 부과의 기준이지만 유럽에서는 최고출력이 기준이다. 같은 엔진을 얹은 자동차지만 국가별로 최고출력이 다른 것도 이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