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의 세계는 왜?] 중국, 코로나19 책임론 잠재우려면

입력 2020-05-1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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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부 차장

연초 1단계 무역협정문에 서명하면서 관계가 개선되나 싶었던 미국과 중국이 다시 최악의 반목으로 치닫고 있다.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미국이 ‘중국책임론’을 들고나오면서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미·중 대립의 주범으로 항상 거친 언행과 돌출 행동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중국도 이런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는 중국이 제2의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는 형국이다.

백악관에서 11일(현지시간)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미·중 갈등으로 얼룩졌다. 트럼프는 ‘중국이 1단계 무역협정을 아예 엎어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협상하려 한다’는 소식에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이미 합의에 서명했다”고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또 미국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자료를 중국 측이 해킹하려 한다는 소식에 “중국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 그들을 지켜볼 것”이라며 성토했다.

당시 외신들은 트럼프가 중국계 미국 기자의 질문에 격분하며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간 돌발 행동에 주목하면서 트럼프가 ‘추잡한 반응’을 보였다며 꼬집기까지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발끈하게 된 계기를 중국이 제공한 것에 대해 아무런 비판이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1단계 무역협정 재협상이 불거져 나온 것은 트럼프 기자회견과 같은 날 나온 중국 환구시보의 보도 때문이다. 환구시보는 중국 우한 연구소가 코로나19의 기원이라는 미국의 주장에 무역협상 담당자들이 ‘분노의 쓰나미’에 휩싸였으며 일부 중국 정부 고문은 경기침체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미국이 무역전쟁을 재개할 여유가 없다며 1단계 합의를 뒤집어 버리자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환구시보는 어떤 매체인가. 이 매체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인민일보 자매지이면서 공산당 지도자들의 세계 각국에 대한 내심이나 민족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역할을 한다. 3년 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당시 한국에 막말을 퍼부었던 곳이 바로 환구시보다. 이런 환구시보가 이번에는 제2의 무역전쟁을 획책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코로나19가 우한 실험실에서 비롯됐다는 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더라도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도 중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해 오늘날과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주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코로나 팬데믹 선언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가 코로나와 싸울 수 있는 시간을 4~6주 낭비했다고 폭로했다. 이 보도의 소스는 바로 독일 연방정보부다. 사실상 독일 정부가 슈피겔 뒤에서 중국을 추궁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책임론에 콧방귀를 뀔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탓에 역설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경제 정상화에 착수했다. 또 마스크나 인공호흡기 등 코로나와의 전쟁에 필요한 의료장비를 세계 각국에 공급할 수 있는 나라도 중국밖에 없다. 이러니 무역협정을 무효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위협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중국은 더욱 겸허하게 행동해 세계인들의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기침체로 전 세계인들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운데 미·중의 영양가 없는 대립은 사람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할 뿐이다. 설령 트럼프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하더라도 중국이 무역전쟁 뇌관을 앞장서 제거하는 등 리더십을 보여주면 ‘중국책임론’도 잠잠해질 것이다. baej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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