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 이재용 선언’ 물은 재판부, 대국민 사과까지 195일

입력 2020-05-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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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감시위 반성·사과 권고 내린지 57일 만…이 부회장 직접 사과문 발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 6월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사태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삼성은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위해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위원회는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와 재발방지를 국민에게 공표하라고 권고했다.

이 부회장은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의 횡령·뇌물 혐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에 3가지 숙제를 내준지 195일 만이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반성·사과 권고를 내린 지로는 57일(만 1개월 25일) 만이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에 △과감한 혁신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체제 폐해 시정 등 3가지를 주문했다.

당시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며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첫 공판 이후부터 재판부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삼성가(家) 롤모델로 알려진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과 만나 양 사 간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유럽 최대 규모 그룹 중 하나인 발렌베리그룹은 오너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삼성은 그동안 발렌베리그룹의 기업 운영방식 등을 일부 벤치마킹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 역시 2003년 스웨덴 출장 때 발렌베리가를 방문한 바 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마르쿠스 회장에게 준법경영과 상생경영을 비롯해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조언이 오갔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은 재판부의 세 가지 당부 가운데 먼저 ‘과감한 혁신’과 관련해선 대규모 투자 발표 및 실행을 통한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부회장은 새해 첫 경영 행보로 화성사업장 내에 있는 반도체연구소를 찾아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 공정기술을 보고받고 차세대 반도체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며 혁신을 강조했다.

재벌체제 폐해 시정과 관련해선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다. 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삼성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에 유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 삼성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내부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준비도 마무리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사장단 및 전 임원이 참여하는 ‘준법실천 서약식’을 열어 준법경영에 대한 철저한 실천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삼성전자 외에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도 서약에 동참했다.

삼성은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협약’ 이사회 의결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2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김지형(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전 대법관이 맡았다. 위원회는 삼성 계열사들의 대외후원금 지출 등을 사전에 검토하는 한편,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를 판단해 이사회에 직접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삼성 7개 계열사에 대한 조사·시정조치 요구 권한도 갖게 됐다.

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과 관련해 반성과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국민에게 공표하라고 3월 11일 권고했다. 위원회는 이같은 권고문을 이 부회장 및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 관계사에 보내고, 30일 이내에 회신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삼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비상경영상황을 고려해 회신 연장을 요청했고, 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권고 회신 기한은 이달 11일로 연장됐다. 이 부회장은 회신 기간을 닷새 앞두고 대국민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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