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乙만 서러운 코로나 대출대란

입력 2020-03-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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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코로나19, 마스크 대란의 판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파산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을 돕는 긴급 정책자금 대출을 놓고 까다로운 심사로 ‘병목 사태’가 발생했다. ‘1000만 원까진 원스톱 대출’이라는 홍보 문구를 확인한 수만 명의 소상공인들이 몰렸지만, 접수 건수는 수백 건에 미치지 못했다. 접수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못했던 탓이다. 더 늦기 전에 폭증하는 수요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맞았던 ‘마스크 대란’을 반면교사로 삼자고 외치고 싶다.

정부는 앞서 긴급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이 신용보증재단 보증으로 최대 7000만 원의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데 이어 26일부터 전국 62개 소상공인진흥공단 지역센터를 통해 대출을 신청하면 보증서 없이 5일 안에 1000만 원 이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자금난에 처한 소상공인들이 저리 보증부 대출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출 상담과 집행 과정의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보증부 대출은 신용이 부족해 시중은행 대출이 어려운 차주가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보증서를 발급받아 은행에서 대출받는 구조다. 통상 ‘상담→서류신청→현장실사→보증심사→보증서 발급→은행 대출’의 절차를 거친다. 종전에는 모든 절차가 1,2주 안에 끝났지만, 신청이 폭주하면서 길게는 2개월가량으로 길어질 전망이다. 상담까지 길게는 한 달이 걸리고 상담 후 서류심사에도 영업일 수로 최대 10일이 소요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대출 속도를 높이는 방안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병목현상이 4월 중순께 해소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기업은행이 4월 초쯤 보증심사를 이전받아 진행하면 중순쯤이면 상황이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당장 죽게 생겼는데 두 달을 어떻게 기다리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생소한 보증 신청도 대출을 지연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제출 서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재무정보’와 ‘기업 개요서’는 보증 신청인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소상공인은 이런 서류 작성을 경험하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다시 수정해서 작성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또 길게는 며칠씩 소요된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560만 명이 넘는 소상공인에게 어떻게 정책금융을 긴급 지원할 수 있겠는가. 마스크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지만, ‘보증을 잘못하면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인식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정부는 향후 부실 발생 시 금융기관 면책을 공언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코로나19 피해 지원에 대해서는 향후 (금감원의) 검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적극적인 면책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신속한 지원을 위해 대출심사 기준이나 절차를 변경 적용한 경우,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제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금융회사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대출에는 갑과 을이 바뀌는 독특한 패러다임이 있다. ‘고객 우선주의’를 앞세운 금융회사가 만든 틀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소비자가 을(乙)의 신분을 얻게 된다. 소비자가 금융회사를 선택할 수 없기에 대출 시장에서의 갑을 관계는 명확하다. 코로나 대출 현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연쇄 파산 사태에 직면한 을(乙)들의 하소연만 들릴 뿐이다.

이에 은행들은 보증과 상관없이 특례 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온라인 접수 확대 등 대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 또 파산에 직면한 소상공인에게는 ‘선(先)대출, 후(後)심사’ 도 고려해봐야 한다. 은행이 기존 금리로 먼저 대출을 하고, 사후 이들의 대출 신청이 문제 없는지 확인해 보증서를 발급하고 저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여신 업무에 나서는 방식 등 다양한 채널을 고민해봐야 한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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