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조순옥 국민은행 상무 “여성, 스스로 한계두지 말라…워킹맘 당당해야”

입력 2020-0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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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이겨내고 노력과 실력으로 KB국민은행 첫 여성 준법감시인에

▲조순옥 KB국민은행 준법감시인 상무가 8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별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된다 된다 나는 된다’

조순옥 KB국민은행 준법감시인(상무)이 즐겨 읽는 책의 제목이다. 입행 20여 년 만에 지점장에 오르고, 재작년 최초의 여성 준법감시인 타이틀을 딸 때도 이 책을 곁에 뒀다. 글귀 하나하나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그는 지금도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인다. 긍정은 조 상무의 또 다른 자아(自我)다.

◇“섬세한 카리스마, 여성의 가장 큰 강점” = 조 상무는 1988년 KB국민은행에 입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원은 입출금 등 단순 업무에 배치됐다. 단지 여자란 이유만으로 남성보다 호봉도 낮았다. 여 행원 승진에 발목을 잡던 ‘전환 고시’는 그가 입행하기 직전 사라졌지만, 조직 내 깊숙이 자리잡은 선입견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은행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남녀 차별이 심했어요. 그럴수록 더 욕심을 부렸죠. 결과를 떠나 ‘난 최선을 다했어’라는 자기만족을 가장 경계했어요. 자연스레 프로 의식이 생기더군요.”

견고한 금융권 유리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00년 후반부터다. 여성 임원을 배출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고. 경영진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차별을 이겨냈다는 데 안주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경쟁력’을 찾았다.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한 리더십’이었다.

“임원에 오르면 조직을 아우를 힘이 있어야 해요. 여성이 지닌 유연한 사고와 부드러움, 공감 능력은 큰 자산이 됩니다. 고객을 대할 때도 똑같아요. 20여 년 전 처음 현장에 나갈 때부터 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요. 낮은 자세로 임하니 그분들도 진심을 알아주시더라고요. 지점장 시절 연을 맺은 고객과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답니다.”

◇“워킹맘, 죄책감 없이 당당해라” = 조 상무에게는 두 명의 딸 있다. 지금은 장성해 엄마의 손을 타지 않을 나이지만, 임신과 육아는 그에게도 큰 고난이었다.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회사에 전한 건 임신 6개월 때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란 편견 때문에 업무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일과 가정 모두를 일궈내겠다는 욕심이 조 상무를 자극했다. 동료들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출산과 함께 퇴사하는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을 더 다독였다. 가장 큰 힘이 된 건 가족이었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남편은 늘 ‘당신만의 장점이 있어요. 자신을 믿어요’라고 응원했다.

“시어머님께서 일하는 며느리를 자랑스러워하셨다는 걸, 돌아가시고 난 후 알았어요. 가족은 정신적 서포터스일 뿐만 아니라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그는 워킹맘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취직한 큰 애가 ‘엄마의 모습에서 사회생활에 관한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간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세요. 당당히 일하는 아내와 엄마를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여성, 스스로 한계 긋지 말아라” = 그는 후배들에게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말라고 당부한다. ‘10개 중 9개를 했다’고 만족하지 말고, ‘나머지 1개를 채우려면 어떡해야 하나’를 고민하라는 얘기다.

“대체적으로 여성 행원들의 업무 처리가 꼼꼼해요. 그런데 중장기 로드맵을 세우는 건 약해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려 노력해야 해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꾸준한 훈련이 필요해요. 의식을 확장하면 일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가 가장 강조하는 건 부단한 자기계발과 폭넓은 인간관계다. 조 상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리더십 관련 서적을 읽고,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현장의 준법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점장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행원일 땐 대리, 팀장일 땐 부장, 지점장일 땐 그 이후를 생각하며 일했어요. 현재 직급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의 입장에서 프로의식을 갖고 업무에 매진했죠. 지금의 자리가 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여성으로서 한계를 긋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행동하면 후배들도 얼마든지 유리천장 위로 올라설 수 있어요.”

◇“은행권 신뢰 회복 키워드는 원칙과 고객” = 준법감시인은 은행의 내부통제를 총괄한다. 최근 해외 금리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로 인해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재작년 타 은행들이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팔 때도 내부적으로 ‘금리 방향성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리버스(금리가 하락할수록 수익이 나는 것)형으로 DLF를 재구성해 고객에게 수익을 안겼다.

조 상무는 내부통제의 통찰력을 지닐 수 있게 된 건 현장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자평한다. 은행의 업무 프로세스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내부통제는 프로세스 안에 녹아있어야 해요. 준법감시인에 선임될 당시 윤종규 회장께서 저에게 ‘법무팀이 할 수 없는, 프로세스가 통제되지 못하는 경우를 찾아내라’고 하시더라고요.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제가 준법감시인에 발탁된 배경이기도 해요.”

그는 은행권 신뢰 회복을 위해선 원칙을 가지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객 신뢰는 하루 이틀 만에 생기는 게 아녜요.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참 안타까워요. 결국은 원칙이에요.

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요.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면 고객들도 마음을 헤아려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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