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탈출이 곤 전 회장의 부인인 캐럴의 주도면밀한 사전 계획 하에 수 주 전부터 준비됐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곤 전 회장이 머물던 일본 도쿄 자택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24시간 내내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했기 때문에 이를 따돌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레바논 현지 TV ‘MTV’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탈출극에 이용했다. 며칠 전 자택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는데, 당시 오케스트라 그룹을 가장한 민간경비업체 사람들이 돌아갈 때 곤 전 회장이 악기를 운반하는 상자에 몸을 숨겨 집을 빠져나갔고, 거기에서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으로 이동해 터키 이스탄불로 날아갔다. 이스탄불에서는 미리 준비돼 있던 개인 비행기를 타고 레바논에 도착, 프랑스 여권으로 입국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곤 전 회장이 레바논으로 들어갈 때 이미 이번 탈출극을 총 지휘한 아내 캐럴이 비행기에 동승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법무성 관계자는 “개인 비행기여도 일반 승객과 똑같은 출국 수속이 필요하다”며 “기록에서 곤 전 회장의 출국 방법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곤 전 회장은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보안당국은 “곤 전 회장이 합법적으로 레바논에 입국했고 어떤 법적 조치도 없을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일본 당국은 해외 도항이 금지되어 있던 곤 전 회장이 어떻게 출국 심사 등의 그물을 빠져나와 레바논까지 이동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의 변호인인 히로나카 쥰이치로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나도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상황에 매우 놀라고 있다”며 관여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큰 조직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단 출국은) 어렵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마치 첩보영화 ‘007’ 시리즈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 이번 사건이 자칫 일본과 레바논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보석 중 피고가 보석 조건을 위반하거나 도주할 경우 법원이 검사의 청구 또는 직권으로 보석을 취소하고 신병 확보에 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곤 전 회장과 레바논의 관계가 워낙 끈끈해서다. 브라질 서부의 레바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곤은 유년기부터 고교 시절까지 레바논에서 보냈다. 국적도 갖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곤을 ‘해외에서 성공한 국민적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레바논 정부도 곤에 대해 남다른 신뢰를 갖고 있다.
일본 검찰이 곤 전 회장을 체포했을 때 레바논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이 체포된 후 레바논 정부는 곧바로 레바논 주재 일본 대사를 불러 장기 구금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고, 레바논 대사관 관계자가 자주 면회를 하는가 하면 취재진에게 곤의 결백을 주장하기도 했다.
곤의 신병 확보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일본과 레바논 사이에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정부가 이스라엘 텔아비브국제공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일본적군’ 일원에 대한 신병 인도를 요청했을 때 레바논이 거부한 전력이 있다. 이번 일본의 곤 전 회장 신병 인도 요청에 레바논 정부가 응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고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