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대 키워드 '30대 시장 주도, 강남 양극화, 집값 W 흐름, 정책 리셋'
총 1만7689자. 정부가 지난해 말 역대급 부동산 대책인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12·16 대책)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 이투데이 빌딩에서 열린 여성 부동산 전문가 대담에서 오간 글자 수다. 10여 년 간 부동산 시장을 분석해온 5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대담에서 전문가들은 ‘수요’ 56회, ‘정책’ 38회, ‘공급’ 25회, ‘30대’ 22회, ‘정보’ 19회, ‘강남’ 16회를 언급했다. 경력 합계만 50년을 가뿐히 넘기는 베테랑들의 입에서 “전망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기어이 끄집어내는 기묘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2020년 부동산 시장을 기존 공식이 통하지 않는 변화의 해로 바라봤다.
※ <참여해주신 여성 부동산 전문가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학과 교수,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가나다 순)
# 키워드1.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유튜브
“부동산 시장에 밀레니얼 세대가 왔다, 그리고 온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부동산 시장 흐름을 깨는 주요인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지목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집을 놓고 희로애락을 겪은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님을 바로 곁에서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집값이 떨어져 울상 짓는 모습부터 집값이 올랐을 땐 집 장만을 안 한 걸 후회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접했다. “집값은 오른다”는 학습을 제대로 한 세대다. 그리고 지금 주택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했고 앞으로 이 세대가 40·50·60대가 되면서 주택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금 집을 사는 사람은 30대”라며 “이들은 자산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을 그나마 헷징(Hedging)하는 게 부동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미화 전주대 교수(부동산학과)도 “최근 강남에 집을 사는 사람들은 30·40대다. (집 처분을 고민하는 다주택자 또는 고령층과 달리) 이들은 집을 안 판다”고 말했다. 특히 작년부터 집값 흐름 전망을 30대가 주도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뒤따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한국은행의 주택 가격 전망 자료를 보면 2018년 이전에는 50대는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30대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2018년 이후에는 30대의 전망치가 더 높아지면서 30대와 50대의 전망 시차가 2개월 정도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집값이 오를 것으로 먼저 판단한 30대가 시장에 진입한 이후 50대 이상이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30대가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의 매력을 봤다”며 “정보 습득이 빠른 스마트한 세대인 이들이 자산을 형성하는 시기에 부동산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쉽게 (시장을) 나가지 않고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밀레니얼 세대 등장과 함께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요인으로 유튜브도 거론됐다. 정부 정책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틈바구니에서 일부 유튜버(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는 왜곡된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이제 정보 매개체로서 필요악의 존재가 됐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유튜버들이 2~3년 전부터는 주택을 주식 분석하듯이 분석한다. 정부가 주택을 공공재라고 얘기하는 것과 반대되는 현상들이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책이 너무 촘촘하고, 복잡해져 웬만한 사람은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실수요자들이 유튜브 속에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그릇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정제, 관리가 없다면 좋은 정책이 나온다고 해도 선한 정책 의도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천막이 있었지만 요새는 ‘사이버상 떴다방’”이라며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이버상 가짜 정보·왜곡 정보 등 국민의 인식을 왜곡시키고 시장을 교란하는 사이버상 정보망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키워드2. 강남도 양극화
강남은 ‘그들만의 리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 강남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서울과 비(非)서울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던 양극화 현상이 서울 강남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작년 12·16 대책과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은 고가아파트에 대해서 보유세 부담을 올릴 거니깐 아파트를 사거나 그런 수요를 부추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게 정부의 의지인 것 같다”며 “9억 원 초과 아파트가 많이 몰려 있는 도심이나 강남의 직접적인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게 정부 의도이고, 그와 관련해 주택담보대출 금지(시세 15억 초과 아파트 대상)는 사상 유례없는 강도 높은 규제였다”고 말했다.
안 부장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 경우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는 것은 올해 상반기까지 출구 전략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집을 팔겠다는 다주택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 물량이 올해 상반기에 나오면 강남 등 고가주택이 포진돼 있는 곳의 아파트값 상승폭은 단기적으로는 한풀 꺾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현금으로 내야 하는 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일부 계층은 강남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버티는 사람은 버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강남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추정한(작년 말 기준) 강남 주요 아파트 단지의 공시가격 변동에 따른 보유세 변동률을 보면 강남구 A아파트(전용면적 84.99㎡)의 경우 시세가 29억1000만 원으로 공시가격이 21억3800만 원(42.1%↑)으로 오른다면 보유세 1042만9000원을 내야 한다.
임미화 교수는 “강남에 집은 있는데 소득과 자산 여력이 부족한 일부 계층은 버티지 못하고 퇴출당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며 “집을 팔고 대체 투자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투자할 만한 곳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 키워드3. 집값 'W' 흐름… 결국 오른다
“집값은 ‘W’ 흐름으로 갈 것이다. 결국 오를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 이후 18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서울 집값은 우상향 기조를 유지했다. 12·16 대책이 고강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함영진 랩장은 “올해 주택시장은 특정 지역보단 서울 전반의 집값 강세를 예상한다. 저금리와 풍부한 부동자금,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이후 새 아파트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강남권 외에도 비강남권까지 아파트값이 골고루 오르면서 가격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다. 저평가된 곳의 키 맞추기 움직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2019년 12월 중순 기준) 주요 지역의 3.3㎡당 평균 실거래가가 △강남구 5235만 원 △서초구 4567만 원 △용산구 3807만 원 △성동구 3115만 원 △마포구 2994만 원 △동작구 2721만 원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의 경우 △강북구 1616만 원 △노원구 1674만 원 △중랑구 1604만 원 △도봉구 1446만 원 △구로구 1704만 원 △금천구 1578만 원 등으로 고가 지역과 비교하면 3.3㎡당 4000만 원 가까이 차이 났다.
함 랩장은 “내년까지는 입주 물량(약 4만3000호)이 부족하지 않겠지만 2021년부터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뉴타운 출구전략 등 정비사업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입주량이 다소 감소할 여지가 있다”면서 “정부의 주택 거래시장 단속과 종부세 인상에 따른 세금 부담 증가로 거래량은 많지 않지만 가격은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물이 많이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명숙 부장은 “작년 12·16 대책으로 단기적으로 시장이 쉬어갈 기회를 제공했고 일부 매물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 안정된 흐름이 이어질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미화 교수는 “12·16 대책에서 양도세 완화 등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해 달라는 시중 요구를 반영했지만 그 효과는 길게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배제한다고 한 대상은 10년 이상 보유 주택인데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집을 사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엄청난 차익을 봤을 것이다. 차익을 봤기 때문에 나가고자 하는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러나 이런 수요는 극소수고, 금방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소득·자산이 부족해 강남에서 밀려 나간 계층의 자리를 누군가는 채울 것이다. 집값이 ‘W’자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키워드4. 정책 리셋
“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시장은 대책을 내놓는다.”
‘정책의 진부함’, ‘시장 눈높이보다 뒤처진 정책’, ‘가격만 바라보는 정부의 다급함’.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을 향해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의 속도를 정부가 못 따라갈 뿐만 아니라 가격에만 매몰된 정책으로 부동산·주택 장을 육성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덕례 실장은 “주택에 대한 생각을 담론화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완전 공공재니깐 정부가 모든 걸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택 중에서도 좋은 주택들이 많다. (공공재라는 공공성에 얽매인 정책을 계속 펼치면)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6억 원 이하로 하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2020년을 기점으로 정부가 주택 수요를 바라보는 시각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앞으로 10년은 ‘팻테일 리스크’(fat tail risk·정규 분포 나머지 부분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져 예측력이 떨어지는 것) 시대로 봐야 한다. 불확실성 극대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주택시장도 예측 불가능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과거 솔루션으로는 설명 안 되는 시장이 많다. 정규 분포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를 헷징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미윤 연구위원은 “주택 문제에 있어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어느 정부, 어느 나라에서도 찬반이 있다. 다만 정책에 대한 시장의 냉소적인 반응이다. 집값을 잡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상설 조직 부처가 있어야 한다. 정책의 지속성·안전성·신뢰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정부가 조직·행정·자금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요 책정 및 공급 계획을 완전히 재점검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진 연구위원은 “정책은 규제만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 시장을 1·2차, x·y축이 아닌 3차원적 공간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실수요를 위한 정부의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의 과도한 것을 규제한다면 시장 수요를 어떻게 충족할 것이냐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실수요자를 위한 대안이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내년에는, 그 후년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총량적 인구를 떠나서 기호나 여건은 항상 바뀐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급만이 지원이 아니다. 변화하는 주택을, 리모델링 등 변화하는 수요를 정부가 어떻게 맞춤식으로 대응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명숙 부장은 “단순히 아파트 단지, 공급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대다. 시장의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정부는 당장 집값에 붙잡혀 (큰 그림의) 정책에 더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인 게 안타깝다. 2020년 주택시장을 2006년 정책 버전으로 대응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