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2] 막 내린 세계경영 신화…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입력 2019-12-10 14:06수정 2019-12-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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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30년 만 재계 2위 대우그룹 일궈, 40조 원대 분식회계로 몰락

김우중<사진>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10일 김 전 회장의 부고를 전하며 “전날 오후 11시 50분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연구회 측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연말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나 병세는 악화했다. 약 1년의 투병 끝에 지난 주말(7일)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고,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평소 뜻에 따라 의료적 연명 치료는 받지 않았다.

㈜대우 대표이사 출신으로 최측근인 장병주 세계경영연구회장은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인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떠나셨다. 별다른 유언은 없었고 고인의 뜻에 따라 의료적 연명 치료는 없었다. 유족 역시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아주대의료원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 장례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치러지고 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별다른 유언없이 의학적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김준형 기자 junior@)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덩치 키운 대우그룹= 고인은 1936년생으로 대구 출신이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거쳐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했다.

만 30세 때인 1967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이후 ㈜대우의 모태가 된 종합상사를 일궈 중소기업의 수출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5세 때인 1981년 마침내 대우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때부터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증권사와 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증권과 대우중공업 등을 세웠고, 경영위기에 빠진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훗날 대우자동차로 키웠다. 일찌감치 뛰어든 건설 분야에서도 대우건설이 제 몫을 단단히 해내기도 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반복한 대우그룹은 1999년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다.

그룹의 이런 성장 뒤에는 해외사업이 존재했다. 그룹 해체 바로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총수출액(1323억 달러)을 고려하면 약 15%가 대우그룹이 일궈낸 수출이었다.

김 전 회장은 1989년 출간한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모두 23개 언어 26판으로 나오는 등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1992년 이 책의 인세 수입을 기반으로 청주에 소년소녀가정의 자립을 지원하는 대우꿈동산을 개원하기도 했다.

(사진제공=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사채 발행 제한에 자금줄 막힌 대우=승승장구하던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와 함께 회사채 발행제한 규제가 나오면서 흔들렸다.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삐거덕거렸고,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며 대우그룹은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내놨으나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결국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의 보증을 서주는 방식을 반복하다 마침내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됐다.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셈이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현대, 삼성과 함께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그룹의 총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 수십조 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부실 대출 등이 드러나면서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21조 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 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 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통해 징역과 추징금이 각각 8년 6월과 17조9253억 원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 2017년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대우그룹 해체 후에도 매년 창립기념 행사=이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갔던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행사 때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 역시 지난해 3월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행사였다.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1999년 그룹 해체 이후에도 매년 창업기념일에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김 전 회장을 포함해 300여 명이 행사에 참석해 옛 대우그룹의 영광을 추억해 왔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ㆍ청년사업가)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로 남겼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됐다. 장지는 1980년대 초 고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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