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부 차장
사실 앤드루 양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정치권의 ‘이단아’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닳고 닳은 정치인인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로 앤드루 양은 미국 정치판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앤드루 양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바로 ‘기본소득제’다. 그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등으로 일자리 감소 추세가 가속화할 것이라며 18세 이상 미국 성인 모두에게 월 1000달러(약 116만 원)를 주는 기본소득제를 주창했다. 그는 자신의 공약을 ‘자유배당’이라고 부른다.
그밖에도 앤드루 양은 ‘미국을 좀 더 생각하게(Make America Think Harder·MATH)’라는 선거 구호나 “트럼프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수학(MATH)을 잘하는 아시아인”이라는 말 등 재치 넘치는 언행으로 인터넷에서 많은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그러나 앤드루 양을 다른 민주당 후보와 두드러지게 차이 나게 하는 것은 역시 기본소득제다. 기본소득제가 ‘옳고 그르냐’, 또는 ‘현실성이 있는지’ 등 논란을 떠나서 그가 미국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AI와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변화가 사람들에게 미칠 문제, 즉 실업사태를 진지하게 거론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IT 대기업으로부터 로봇세 같은 세금을 걷어서 기본소득세 재원으로 쓰자는 그의 주장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잭 도시 트위터 CEO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공개 지지를 표명한 것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앞으로 세상이 격변할 것임을 직감하고 있는 이들 CEO 입장에서는 아직도 과거 논리에 잡혀 있는 옛날 정치인들보다 앤드루 양의 공약이 더욱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일자리를 잃고 백수가 된다는 것은 실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공포와 불안이다. 소득이 순식간에 제로(0)가 돼 생계가 위협받고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는데 AI 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주장을 펼쳐봤자 납득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인 미국 ‘러스트벨트(제조업이 쇠락한 중서부 지역)’ 근로자들이 앤드루 양에게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정부가 실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연방정부 일자리 보장제(Federal Job Guarantee)’를 제안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본소득제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이는 과거 공산주의 몰락으로 이미 증명된 것이다.
한편 앤드루 양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그 취지는 좋지만 중소 상공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자동화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는 한국 현실에 비춰봐도 의미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앤드루 양의 선거 캠페인 슬로건은 진영논리에 함몰된 우리나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왼쪽도 아닌, 오른쪽도 아닌, 앞으로(Not Left, Not Right, Forward).”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