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판문점 만남 이후 북·미의 셈법

입력 2019-07-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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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핀란드 대사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후에 북·미 실무협상을 갖기로 했다고 했다. 드디어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협상의 본게임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섣부른 일일 수 있지만 판문점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바탕으로 북·미 협상의 향배를 유추해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대선에서 민주당을 가장 효과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일 게다. 이것이 앞으로 협상의 목표, 타임라인,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반대급부의 테두리를 정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관례, 통념 같은 것들을 깨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시성을 높여주는 톱다운 방식도 계속 활용될 것이다.

그 징후들은 판문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적국 지도자의 안내로 적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며 잦은 스킨십을 보였다. 김 위원장을 미국에 초청했다고도 했다. 통념상 외교 관계가 없는 적국의 정상을 초청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하노이 회담이 성공이었다고 말하고 북측 협상 팀원들의 안위에 대한 관심도 표명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극구 감쌌다. 미국에 돌아가서는 김 위원장이 건강해 보인다는 멘트도 날렸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2년 반 전에는 이 지역이 매우 위험했는데 지금은 평화로워졌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9점 몇 도의 지진이 났고 일본, 하와이 쪽으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사이렌이 울렸다고도 했다.

그는 제재에 대해서도 말했다. “제재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제재가 해제되기를 기대한다. 협상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협상과정에서 제재에 손을 댈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에 그는 김 위원장을 만나 줌으로써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협상의 달인임을 자부하는 그는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는 말을 가장 싫어할 수 있다. 판문점에서 그가 지금의 성과가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친분 때문임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가 너무 일찍 또는 쉽게 제재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일 수도 있다.

조만간 북·미 실무협상이 시작되면 어떤 제안들이 오갈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5개의 핵시설 가운데 1~2개만 폐기하겠다고 해서 협상이 깨졌다고 했었다. 이 말에 비추어 이 방안이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 있다. 며칠 전부터 미국이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 동결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대선 전에 완전한 핵 폐기가 난망한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차선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최우선 고려사항은 선거운동에서 쓰임새가 가장 큰 결과를 얻어내는 것일 게다.

두 가지 방안 모두 결점을 안고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두 번째 방안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1~2개와 5개 사이에서 타협을 하면 완전한 핵 폐기는 일단 물 건너가는 반면 북한은 반대급부로 북미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비판하는 쪽으로부터 뭇매를 피하기 어렵다. 반면 동결은 완전한 비핵화는 아니지만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생산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나름의 효과가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막았다는 점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그가 그렇게 생각할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반대급부로 제재 해제, 체제 안전보장을 원한다. 그런데 제재를 변경하려면 미국 법령이나 안보리 결의들을 수정해야 하고 체제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평화협정, 북미수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 다 미국 대선 이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중간 목표로 이들을 제외한 반대급부를 북한에 주고 동결을 얻어낸다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김 위원장을 워싱턴에 초청하고 상주대표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를 위한 정지작업일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늘리는 것을 막아 미국과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동결도 제대로 하려면 핵시설 리스트와 검증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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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생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외무고시 20회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외교부 북미3과장(한미안보협력), 청와대 행정관, 주유엔대표부 공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 주라오스 대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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