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일감몰아주기 근절, 기업과 시장을 살리는 길이다

입력 2018-10-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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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

▲신봉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조사 결과를 발표했던 H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사례를 보자.

H그룹의 대표 계열사는 국내 맥주시장을 오랫동안 석권해온 맥주회사다.2008년 초 총수 2세가 중소업체 하나를 인수하자 그때부터 맥주회사는 맥주캔 구매 물량 전부를 이 업체에 몰아줬다. 총수 2세 회사는 종전 납품업체로부터 맥주캔을 받아다가 그대로 넘기면서 공캔 1개당 2원씩 통행세를 챙겼다. 이 거래가 법 위반으로 적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몇 년 지나서 방식을 바꿨는데 공캔 납품업체를 압박해 각종 원자재 구매 시 총수 2세 회사를 끼워 넣도록 했다. 총수 2세 회사에 직접 일감을 몰아주다 계열사도 아닌 납품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게 한 것이다.

결과는 심각했다. 총수 2세 회사는 100억 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제공받고, 이를 바탕으로 중소 업종인 키즈카페 사업까지 벌였다. 나아가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던 회사라 경영권 승계의 토대도 마련됐다. 계열 관계도 아닌 총수 2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통행세까지 물게 된 공캔 납품업체는 자사에 원자재를 공급하던 중소기업들의 납품 단가를 삭감했다.

H그룹 사례는 우리나라 대기업집단과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의 실태와 폐해를 압축해 보여준다. 2014년 국회는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에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도입했다.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총수 일가 소유 회사를 상대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상당한 규모로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총수 일가 소유 회사의 기준은 당시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상장회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비상장회사는 20% 이상인 경우로 한정했다. 그런데 올해 6월 사익편취 규제가 시행되고 4년여가 지나 실태조사를 해 본 결과 충격적이었다. 당초 규제대상이던 다수 회사들이 규제를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종전과 동일하게 내부거래를 해오고 있었다.

총수 일가가 규제 대상 상장회사 지분 일부를 매각해 29.99%와 같이 규제 대상 요건에 조금 못 미치게 지분율을 낮추거나 일감을 몰아받던 사업부문을 분할해 자회사로 만들어버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더구나 사각지대에 위치한 다른 회사들 역시 규제대상 회사들과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영위 업종도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 업종으로 불리는 시스템 통합(SI), 부동산 관리, 물류, 광고업 등 서비스 분야가 주종을 이뤘다. 또한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으며 계열사 간 거래의 90% 이상이 수의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30% 구간에 있는 상장회사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의 자회사를 사각지대로 보고 올해 8월 사각지대 회사도 사익편취 규제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기업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일감 몰아주기는 회사의 이사나 주주가 감시하면 충분하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H그룹 사례에서 필자는 관련 회사들의 이사회 운영실태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일감을 몰아준 맥주회사는 물론 총수 2세 회사 모두 매년 공캔 내부거래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의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의 타당성이 논의된 기록은 전무했다. 주주들이 문제 제기한 적도 없었다.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의 부당한 지배력 확대와 편법 승계를 방지하고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반 확보를 위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총수 일가 이익을 위해 일감을 몰아주는 회사는 비효율과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H그룹 맥주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일감을 몰아주던 기간 반토막 난 사실을 돌이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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