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국제공조 ‘와르르’ …금융위기 또 터지면 ‘탈출구’가 없다

입력 2018-09-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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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무역전쟁에 각자도생 중… 그나마 안정적이던 신흥국도 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지난해 1월 23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철회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기존 글로벌 무역 관계를 뒤흔들면서, 경제 위기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위기가 발발하기 전에는 늘 전조가 있었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선 이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둘러싸고 경고음이 나오고 있었지만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10년간 계속된 서구 자본 시장의 승리감에 젖어 있었고, 그의 후임인 벤 버냉키 의장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시장의 문제는 제한적”이라며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내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작 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건 198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 쪽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미국 편집 책임자인 질리언 텟은 금융위기 발발 10년을 맞아 쓴 최근 칼럼에서 당시 당국자들이 경고 신호를 놓치게 된 원인을 ‘무사안일주의’에서 찾았다.

텟은 금융위기가 촉발되기 직전이던 2007년 여름, 현재 일본은행(BoJ) 부총재인 나카소 히로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나카소는 “미국의 모기지 및 신용시장의 문제 때문에 금융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뜬금없이 경고했다. 서브프라임 시장과 밀접한 미국과 유럽 쪽 중앙은행에선 아무런 경고가 없는 상황에서 지구 반대편에 자리 잡은 일본 쪽에서 이런 반응이 나와 텟은 다소 당황했다고 한다. 이에 텟은 “왜 비관적이냐”고 물었고, 나카소는 “데자뷔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역시 부동산 버블과 붕괴, 1조 달러에 이르는 부실 대출이 단초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방 세계 당국자들은 일본의 실패를 세계 금융사에서 ‘각주’로 간주했다. 연준이나 월가, 런던시티의 금융인들은 미국이 일본 같은 굴욕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나카소는 “금융위기 초기 단계에서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의 위기 관리 능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인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의 여파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텟은 규모와는 관계없이 위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탐욕과 불투명성, 금융사들의 위험 간과이며 둘째는 투자자 정부 기관 3개 축의 신뢰 상실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당시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텟은 지적한다.

문제는 10년 전과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는 대공황(Great recession)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라는 침체의 터널에서 탈출하고자 서로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발 무역전쟁에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느라 여념이 없고, 금융위기 당시 선진국 경제가 침체하는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잠잠하던 신흥국에선 통화 위기가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금융위기가 발발하기라도 하면 이번엔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2008년 위기 때 미국은 정권 교체기와 맞물렸지만 헨리 폴슨(조지 부시 행정부)과 티모시 가이트너(버락 오바마 행정부) 두 정권의 재무장관이 공조해 파산 지경인 금융기관에 공적 자금을 투입, 공격적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바닥 균열을 막았다.

국제 공조도 극적으로 이뤄졌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2개월 후인 2008년 11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를 차지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경기부양책 공조, 보호주의 자제 등에 합의했다. 다음 해인 2009년 4월 G20 정상들은 영국 런던에서 두 번째 회동을 갖고 G20 정상회의를 제도화했다.

신흥국의 대두도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했다. 중국이 총 4조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펼쳐 가장 먼저 ‘V(브이)자’로 회복하며 세계 경제를 떠받쳤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왜곡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게 양극화다. 이를 비집고 출몰한 것이 반세계화, 반엘리트들의 포퓰리즘이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에서는 정치 신예이자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탄생했고,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등지에서 포퓰리스트 정권이 탄생, 유럽연합(EU)의 결속을 흔들고 있다.

더 심각한 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정권이 G20, G7 같은 선진국 간 국제 공조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판 스무트-홀리 관세법처럼 상대를 불문하고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세계 곳곳에 ‘트럼프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주적이 된 중국이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4조 위안(약 656조 원)의 경기부양책으로 기업과 지방정부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수출 의존형 경제에서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터키의 경제 위기가 중국까지 번지면 신흥국 전반의 위기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세계가 1990년대 일본에 비해 오늘날 중국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FT의 유명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최근 칼럼에서 “세계는 다음 대형 위기는 물론 대규모 경기침체를 극복할 자신도 없다”며 위기감이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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