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사회적 책임 대신 지분이익만 관심, 글로비스 보유지분 없어 객관성 떨어져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요구했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명분과 지분이 모두 부족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엘리엇은 우리시간으로 23일 오후 별도 홈페이지와 한국 언론대행사를 통해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 이후인 지난 4일 "현대차그룹 계열사 3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지 약 3주 만이다.
◇모비스와 현대차 합병후 지주사 전환 요구 = 엘리엇은 현재 그룹 측이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과 이사회 구성 등 총 4가지 부문에서 요구안을 내놨다.
먼저 "지주사를 경쟁력 있는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OEM)로 재탄생시켜 현재의 복잡한 지분 구조를 효율적으로 간소화할 수 있다"라며 현대차와 모비스 합병을 제안했다.
엘리엇이 예시로 든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은 총 4단계다. △모비스와 현대차 합병후 합병회사 구축 △합병회사를 상장지주회사(현대차 홀드코)와 별도의 상장사업회사(현대차 옵코)로 분할 △상장지주회사(현대차 홀드코)가 상장사업회사(현대차 옵코)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 △기아차가 소유한 현대차 홀드코 및 현대차 옵코 지분에 대한 전략적 검토(순환출자 해소 및 기아차 자본 확충) 순이다.
둘째로 과대화된 대차대조표 해소도 촉구했다. 엘리엇은 "모비스 및 현대차의 과대화된 대차대조표 해소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자사주를 소각하고,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및 현대글로비스 주식에 대한 적정 가치를 검토하고 자산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순익기준 최대 50% 배당…이사회 구성도 바꿔야" = 배당에 대한 압박도 밝혔다. 이들은 "배당지급률을 순이익 기준의 40∼50%로 개선하는 명확한 배당금 정책"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은 소액주주에 돌아갈 이익이 분명하지 않고,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것만으로 기업경영구조가 개선됐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현재 비상임이사는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 선임된 인물인 탓에 국제경영에 경험이 많은 인물을 이사회에 추가해야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들은 "현재 비상임이사들 대부분이 학계와 법조계 출신"이라며 "국제경영과 관련해 경험이 풍부한 사외이사 3인을 추가 선임할 것"을 촉구했다.
엘리엇은 "이 제안을 받아본 현대차그룹 주주 대부분은 모두 개선점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며 "제안서를 채택하면 현대차그룹의 모든 이해 관계인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사회적 책임 외면하고 보유지분 가치만 관심 =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의 이런 제안이 사실상 실현이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나아가 주주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기에도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앞서 엘리엇은 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지분을 약 1조 원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현대차그룹 3사 이외에 글로비스 지분이 없는만큼 자사가 보유한 이들 세 회사의 지분가치 상승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엘리엇이 요구한 모비스와 현대차의 합병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분할ㆍ합병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쪽 주주 모두에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며 "합병한 이후 상장지주사와 상장사업회사로 나뉘는 경우 역시 그룹이 전반적으로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편안과 상충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현대차그룹이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역점을 둔 '사회적 책임'은 철저하게 배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거액의 양도소득세(1조 원 이상)를 감수하면서 사회적책임을 강조했다.
여기에 대주주 일가가 쥐고 있는 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줄이는 방식까지 택했다. 엘리엇은 이런 가치에 대해 분석과 평가는 내놓지 않았다.
◇지주사 전환하면 향후 M&A까지 차질 =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점은 지주사 체제가 아닌, 지배회사 구조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금융계열사를 둘 수 없고, 지분규제도 심하며 인수합병(M&A) 때 제약이 많다.
롯데그룹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롯데손해보험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내년 하반기까지 정리해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엘리엇 요구대로 지주사로 전환하면 신차 판매에 적지않은 효과를 얻고 있는 현대캐피탈은 물론 현대차투자증권 지분도 팔아야 한다.
요구안을 모두 관철시키기 위한 엘리엇의 지분도 현재 미비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5일 "(엘리엇 지분 참여는)민감한 이슈가 아니지 않나"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는 "현재 엘리엇이 가지고 있다고 밝힌 지분 구조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할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 만큼 현대모비스 지분 9.84%를 보유한 국민연금 역시 엘리엇에 동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박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 공정위와 국민연금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보다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지분 이익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엘리엇을 포함한 국내외 주요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앞서 발표한 출자구조 재편의 취지와 당위성을 계속 설명하고 소통해 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