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각지서 ‘생활고’ 반정부 시위 격화...로하니, 중도·개혁 노선 위기

입력 2018-01-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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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시위가 엄격히 금지된 이란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강권적인 이슬람교 시아파가 지배적인 이란에서 민중이 정부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서방 6개국과 이란 핵 합의를 이끌어낸 뒤 관련 제재 해제로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해온 중도·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는 난감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테헤란대학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학생이 경찰이 던진 체루탄 연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AP연합뉴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무회의 연설에서 “국민은 자유롭게 비판할 권리가 있다”며 “공약으로 내건 국민 생활 향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비판은 폭력과 재산 파괴와는 다르다. 정부는 공공 재산이나 사회 질서의 파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한 점이 있다면 직업을 창출할 수 있겠느냐, 경제 상황이 개선되겠느냐”며 진정을 호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는 지난달 28일 이란 제2도시인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시작, 이후 테헤란, 이스파한, 케르만샤, 아흐바즈, 하메단 등 전국 각지로 확산했다. 시위대는 현 정부가 물가 폭등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보수적인 종교 도시인 마슈하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는 건 로하니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위대 중에서는 심지어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부 시위 참가자는 이란 국기와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태우는 등 시위가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이란 정부의 강경 대응에 시위 규모는 더 커지고 있어,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서부 쪽에서는 시위 참가자 2명이 숨졌고, 치안당국은 총 200명을 구속한 상태다.

시위 지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이란 정부는 시위 참여 확대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메시징 앱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등 정보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 “인권 유린”이라며 “좋지 않다”고 비난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서방 세계와의 핵 합의에 따른 관련 제재 해제로 석유 수출이 늘면서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핵 합의 파기를 시사하면서 유럽 금융기관들이 이란과의 사업 참여에 주저하게 됐고, 이란 경제는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는 침체감이 두드러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6년 12.5%에서 2017년에는 3.5% 정도로 둔화했다. 물가상승률도 일시적으로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10%대의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란의 통화인 리얄 가치는 하락일로여서 서민들은 체감 경기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위대의 분노가 이란의 팽창주의적인 외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마슈하드 시위에서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와 레바논이 아닌 이란인의 생활을!”이라고 외쳤다. 시위대는 당초 물가 상승 등에 불만을 호소했지만 일부는 1979년 이후 계속해서 엄격한 이슬람 혁명 체제의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트위터에 “억압적인 체제는 영원해 이란 사람들이 선택에 직면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며 시위에 참가자들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지만 트럼프 정권의 ‘반 이란’ 의지가 선명해져 공약인 국제 융화 노선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 경제와 사회적 혼란은 보수 강경파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도 우려되는 바이다.

이란은 2009년 보수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재선을 결정한 선거에서의 부정 의혹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당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력 탄압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는데, 이번 시위는 그때 이후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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