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Eye]‘노벨 경제학상’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으로 본 노후 대책은?

입력 2017-10-10 14:45수정 2017-10-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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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행동 경제학의 권위자인 그는 심리학과 경제 행위와의 관계를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①제한된 합리성, ②사회적 선호, ③자제력 부족 등 경제적 의사 결정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심리적 특성을 밝혀낸 점을 세일러 교수의 공적으로 평가했다. 즉,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결정을 한다’는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의 가정 자체에 의문을 품은 게 수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가 말하는 노후 대비책도 행동 경제학에 기반한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경제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심리적 특성

우선, ①‘제한된 합리성’의 개념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사회과학자이자 행동과학적 조직론의 창시자인 허버트 사이먼이 만들어낸 것이다. 요약하면 인간은 인지 능력의 한계로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세일러는 그 예로서 금전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심리적 작업을 ‘정신 회계(마음의 가계부)’로 이론화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마음 속에 생활비다 유흥비다 해서 지출항목을 만들어놓음으로써 금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합리적으로 전체 자산에서의 효과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대표적 오류를 보면, 단기적으로 필요한 지출에 돈 쓰는 것을 하찮게 여기다보니 전체 자산에 여유가 있어도 대출을 받아 굳이 불필요한 이자 비용을 지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②‘사회적 선호’는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만을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과 타인의 이익도 감안해 선호하는 것을 말한다. 세일러는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 실험을 통해, 인간들은 익명성 하에서도 타인에게 공정하게 행동하고, 타인에게 불공정하게 행동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비용 지불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③‘자제력 부족’은 새해 결심이 왜 유지되기가 어려운지를 다룬다. 매년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흡연자가 올해는 담배를 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눈앞의 담배를 보면 저절로 손이 가는 경험을 한다. 일반 경제학은 이런 문제를 이시점(異時点) 간의 선택이라 규정하고 할인율을 사용해 계산하는데, 세일러는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게임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할인율의 구조를 밝혀냈다.

행동 경제학의 세계에는 ‘넛지(nudge)’라는 개념이 있다. 심리적 특성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발안한 사람이 세일러다. 실제로 그는 행동 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저축 행동을 개선시키는데 성공, 현실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작은 넛지로 큰 효과가 나타났음이 보인다. (진한 파랑=임의 가입, 연한 파랑=자동 가입). 출처:뱅가드그룹/WSJ

◇행동 경제학은 근로자의 노후 대비에도 기여했다

세일러 교수는 행동 경제학의 가장 큰 성과로 근로자의 노후 대비 저축 이론을 꼽는다.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코노미스트들이 10가지 정도 댈 수 있다고 치자. 세일러 교수는 저축을 못하는 이유를 100가지도 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노후 대비에 소홀한 사람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노후를 대비하는데 있어서 행동 경제학이 중요한 건 노후에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데다 자기 관리도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그는 퇴직 후 어느 정도의 저축이 필요한지를 만 명에게 알아보게 하고, 그 만 명이 그 계획을 정확하게 실행한다는 전제는 어리석다며 기존의 경제학에 반론을 제기한다.

세일러는 근로자의 노후 대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업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에게 중요한 것은, 직원이 퇴직에 대비해 충분한 저축을 하지 않은 경우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퇴직에 대비한 저축을 더 쉽게 하고, 더 성공하기 쉽게 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CEO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세일러는 바람직한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의 4가지 요소를 꼽았다(미국의 경우). 첫 번째는 자동 가입, 두 번째는 직원의 적립비율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갹출률 자동인상, 세 번째는 투자처가 되는 좋은 디폴트 상품 설정, 네 번째는 자사주에 대한 투자 장려다. 세일러는 인사와 재무 담당 부서가 이러한 요소를 도입하면 대부분의 직원이 안락한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여기서 근로자들에 요구되는 건 이러한 직장의 제도를 적극 이용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일러는 갹출률 자동인상제도가 없다면 스스로 연 1~2%포인트씩 높여 적어도 12%가 될 때까지 그 비율을 높이라고 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수수료로 운용되는 타깃 데이트 펀드(근로자의 은퇴 시기에 따라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절해 운용하는 펀드)같은 분산형 포트폴리오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세일러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수수료가 비싼 펀드에 투자하는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자동가입, 기여비율 자동인상, 좋은 디폴트 상품(자동투자 상품) 등 3가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했다. 그리고 전직한 사람에게는 확정 기여형 연금의 401K 플랜을 개인형퇴직계좌(IRA)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중간에 부득이하게 해지 사유가 생기는 것이다. 대체로 해지는 개인의 지출을 억제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세일러는 행동 경제학은 이 대목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 유혹에 굴복하는 등의 불합리한 결정으로 노후 대비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고비이기 때문이다.

◆401K

미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연금제도로 근로자가 일하는 직장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 중 하나다. 근로자가 받는 급여 중 일부와 회사에서 제공하는 매칭을 합해 노후 자금 마련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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