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타계했다. 향년 87세. 콜 전 총리가 속한 기독민주당은 16일(현지시간) “우리는 애도한다. 평화롭게 잠들기를” 라며 콜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알렸다. 그는 이날 오후 2시께 루트비히스하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콜 전 총리는 1982년 서독의 마지막 총리로 취임에 1998년 통일 독일의 첫 총리로 1998년 퇴임하기까지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다. 전후 독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직을 지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나서 이듬해까지 조성된 이른바 통일 정국에서 ‘점진통일’ 대신 ‘조기통일’ 논리를 내세워 1990년 10월의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 그는 특히 1990년대 통일 독일을 이끄는 것을 넘어 유로화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 내 전쟁을 막으려면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에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유럽의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자 유로화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콜은 임기 내내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와 라이벌로 꼽혔다. 그만큼 유럽 통합을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동독 정부 부대변인이었던 앙겔라 메르켈을 독일 중앙무대에 세운 것도 콜 전 총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콜은 과거 총리 재임 시절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민당 자체가 수세에 몰렸고, 당시 기민당 사무총장이던 메르켈은 ‘정치적 아버지’콜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당을 지켜냈다. 이에 콜은 명예대표직을 내려놓았고, 2002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유럽 현대사의 중심인물이었지만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말년은 좋지 못했다. 2008년 콜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 신세가 됐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투병 중인 2008년 33세 연하인 마이케 리히터와 결혼했지만 전처소생의 두 아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졌다. 2012년에는 심장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뒤 은둔 생활을 해왔다.
그의 타계 소식에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콜을 기리며 EU 건물들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콜과 함께 탈냉전의 혼란스런 시기를 보냈던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어느 지도자들보다 먼저 성명을 내고 “자유의 진정한 벗, 전후 유럽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내가 생각해온 인물을 잃게 됐다”고 애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콜은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람이었다”라며 애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는 독일을 16년간 이끄는 동안 미국의 친구이자 협력자였다”라며 “독일통일의 아버지이자 대서양 양안 동반자관계의 지지자였다”고 애도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