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에 들썩이고 있으면서도, 실제 화폐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외환 거래 강국인 일본은 이미 비트코인에 화폐로서의 자격을 부여했고, 금융 강국 영국은 비트코인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다. 반면 미국과 우리나라는 아직 가상화폐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 현금과 다른 점은 이것 =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한해 뒤인 2009년 익명(가명 나카모토 사토시)의 인물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P2P)의 빠르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게 설계했다. 금처럼 유통량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총발생량은 2100만 비트로 현재까지 1635만 비트(26일 오전 기준)가 생성됐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발표하면서 금융위기의 본질적 문제 중 하나가 각국의 제한 없는 화폐발행이라고 지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발행량이 2100만개로 한정된 이유다.
중앙은행을 통한 화폐발행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주류 경제학자의 기본철학과는 대치된다.
가상화폐는 종종 현금과 유가증권 등과 비교된다. 현금은 정부가 한국은행을 통해 보증하는 안전한 지급수단및 보증 수단이다. 유가증권(주식) 또한 한국거래소가 안정된 규칙을 통해 장부상 거래를 주관하고, 예탁결제원은 실제 증권을 보관하면서 실물 이동의 비용이나 분실 위험을 줄여준다.
가상화폐(비트코인)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장부를 개개인에 공동 보관하도록 해 중앙화된 거래소가 필요 없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비트코인 거래소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의 사기업인 증권회사와 같은 개념이다. 이 때문에 '거래소'란 단어가 혼동을 주기도 한다.
증서나 지폐(현금)라는 실물 화폐가 없어 예탁결제원과 중앙은행과 같은 기능은 보관의 기능을 비트코인 거래소가 포함하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 거래소가 국가기관이 아니므로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해 보증이 쉽지 않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약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 고객 자산보호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려는 움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트코인 거래소들이 자금을 투명하고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트코인의 화폐 인정 유무보다 더 급한 사안"이라며 "화폐 인정에 관해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디에서 쓰나요?"… 실제 사용은 '글쎄' = 비트코인의 사용이 활발한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올해 초 비트코인을 합법화하면서 금융시장 디지털 화폐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기업 비트플라이어(bitFlyer)에 따르면 올해 안에 약 30만 개의 일본 상점이 비트코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본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상점은 42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식당, 주유소, 편의점 등 다양한 소매업종에서 비트코인을 받고 있다. 일반인들은 가스요금을 납부 할 수도 있다. 일본 가스공급업체 닛폰가스는 본사에서 고객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비트코인용 ATM기기에서 가스요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항공사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일본 저가 항공사인 ‘피치 에비에이션’도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취항지 공항 카운터에 비트코인 전용 ATM을 설치하거나 현지 상점에 비트코인 도입을 독려해 관광객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비트코인의 사용처는 늘어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인정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와 유럽 일부 지역에선 비트코인만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 전 세계 비트코인 사용처를 지도상에 표시해 보여주는 코인맵(coinmap) 사이트를 보면 현재 전세계 9113개의 상점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사용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코인맵에 따르면 국내 비트코인 사용처는 쇼핑몰, 커피숍, 헤어숍, 레스토랑, 숙박업체 등 서울 41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는 8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사용처도 주인이 바뀌면서 비트코인을 안 받는 곳이 많다.
국내에선 비트코인은 대부분 해외 송금 등에 쓰이고 있다. 국가간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아 거래도 간편하고 송금 및 환전 수수료를 물지 않아도 돼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이용자들은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기대어 결제 수단이 아닌 투자처로서 더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개념이 어려워 소비자들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 사용처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카드 결제는 업주가 수수료를 부담하지만, 비트코인은 소비자가 수수료를 전액 부담한다는 점도 사용자들에게는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