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감자 파동…근저엔 또다른 보호무역주의

입력 2017-04-27 15:22수정 2017-04-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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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 대형 슈퍼마켓의 텅 빈 감자칩 선반. 산요신문

일본을 강타한 감자 파동이 단지 태풍에 의한 흉작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난해 홋카이도 지역을 강타한 태풍의 영향으로 감자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시중에 감자 관련 제품의 씨가 마른 건 맞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감자 파동의 배경엔 또다른 보호무역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달초 일본 주요 방송사들은 일제히 감자 쇼크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국민 간식인 감자칩 생산이 중단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자세히 조명했다. 평소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감자칩 브랜드들과 텅 빈 슈퍼마켓의 감자칩 선반,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아쉬워하는 시민들의 모습, 이와 함께 작년 여름 태풍으로 물에 잠긴 홋카이도의 감자 밭도 보여줬다.

일본의 감자칩 애호가들은 이번 홋카이도의 감자 흉작으로 가루비 등 주요 감자칩 생산업체들이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면서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일본 슈퍼마켓의 선반에서는 이미 매실 맛, 프렌치 샐러드 맛 등의 인기 감자칩이 동이 났고, 온라인 경매에서는 웃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의 식·음료 시장에서 단발성 기상이변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이 문제는 이미 9개월 전에 다 알고 있던 것이고, 감자는 국제시장에서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이런 취약점은 일본이 앞으로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또한 아베 신조 정권이 현재 무산될 위기에 처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틀을 부활시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특별한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감자 쇼크의 근저에는 농업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일본에서 소비되는 감자와 감자 제품의 78%는 미국 생산자들이 공급한다. 일본 내에서 공급되는 건 겨우 20%정도라는 이야기다. 이 정도는 수입량을 늘려서 해결하면 그만. 감자 쇼크니 감자 파동이니 하는 건 과잉 반응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가루비나 고이케야 같은 일본의 감자칩 메이커들은 대체 왜 생산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감자 수입량을 늘리지 않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감자 부족 상황이 아닌데도 말이다. FT에 따르면 일본은 농산물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일본의 식품산업은 지난 20년간 약 40%의 자국 내 식량자급률(칼로리 기준)로 가동돼왔다. 감자의 경우 일본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모되는 감자의 약 80%가 해외, 특히 미국에서 들어온다. 수입된 미국산 신선감자에는 4.3%의 관세가 부과된다. 수입관세율 치고는 결코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감자칩 업체들이 감자 수입량을 늘리지 못한 건 업계의 로비의 힘이라고 FT는 지적했다. 일본 농업로비단체의 힘과 일련의 비관세 장벽을 마련하는데 주요 산지인 홋카이도가 적지 않은 입김을 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신선감자(패스트푸드 감자튀김용, 건조 감자와는 다름) 수입을 금지하는 이유로, 감자암종병이나 감자 씨스트 선충 등 전염병에 대한 우려를 들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것이 거짓 주장에 근거한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배척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가 일본인의 창자에서 소화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쳤던 만큼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런 입장은 11년 전인 2006년 흉작으로 다소 완화됐지만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일부 주(州)에서 1년 중 2~6월까지 일본의 항구 근처에 있는 공장에서 가공되는 조건으로만 신선감자의 수입을 허용한다. 특별한 식물방역검사와 농약안전기준도 충족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신선감자에 대한 관세율은 4.3%로 낮지만 미국산 감자의 일본으로의 수출은 이런 비관세 장벽 때문에 연간 약 1000만 달러로 제한돼왔다.

하지만 규제만큼 유효했던 것이 농업로비단체가 보호주의적 신념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자국산 농산물은 그 어떤 외국 상품보다 품질이 좋다며, 예를 들면 최고의 감자 칩은 홋카이도산 감자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가루비가 감자 쇼크로 감자칩 생산을 아예 중단한 것도 이런 이유를 들고 있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TPP 탈퇴 결정에 가장 실망감이 컸던 게 미국 주요 감자 산지인 아이다호였다. 미국감자협회는 TPP가 발효되면 일본 감자시장 개방 폭이 넓어져 연간 수출액이 5년 안에 5000만 달러로 확대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아베 총리가 미국이 빠졌음에도 TPP 체결에 열을 올리는 건 적어도 자국 감자업계에 대해선 눈을 감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FT는 미국이 TPP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미국 생산자는 다른 나라 생산자로 대체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일본 감자칩 애호가들은 앞으로 미국산 대신 호주산 감자로 만든 감자칩을 먹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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