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원을 1950만원으로 적어… 피고인측 "공탁금 양형 반영안됐다" 주장
법원이 판결문에 피고인이 낸 공탁금 8000만 원을 잘못 계산해 '1950만 원'으로 적고 실형을 선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단순 오기'라는 재판부 주장과 달리 공탁금을 양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부는 지난 7일 1억 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1년 2월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이 선고한 1년 6월에 비해 4개월이 깎인 셈이다.
이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러 피해자에게 피해배상 명목으로 1950만 원을 공탁했다"며 "그 밖에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들을 함께 보고 형을 다시 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문제는 판결문에 A씨가 공탁한 금액이 잘못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판결문을 받아본 A씨 측은 자신이 낸 공탁금 8000만 원이 1950만 원으로 잘못 적힌 것을 발견했다. 전체 공탁금의 4분의 1에 불과한 액수다. 당황한 A씨 측은 사건을 심리한 주심 판사인 B씨에게 연락했다. 담당 판사는 "공탁금 8000만 원을 다 반영한 형량이고 판결문은 오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는 게 A씨 변호인의 설명이다.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기록을 검토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또다시 전화를 해 재판부 직권으로 판결문 수정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경정(수정)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판결문을 들고 접견을 간 변호인은 뒤늦게 A씨가 상고를 포기한 것을 알았다. A씨는 공탁금액이 잘못 기재된 사실을 알고 분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판결은 양측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14일 확정됐다. A씨 측은 "8000만 원을 공탁했는데 '800만 원'이나 '8억 원'으로 기재됐으면 단순 오타나 오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1950만 원'은 재판부는 오기라고 하지만 오기가 나올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재판부가 기록을 보지 않았고, 양형에 반영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재판부가 공탁금을 양형에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의 일반사기 사건의 경우 기본 형량이 징역 1~4년이다. '피해가 상당 부분 회복된 경우'는 특별양형인자로 형 감경요소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손해액의 약 3분의 2 이상을 배상한 것을 의미한다. 전체 피해액의 20% 변제와 80% 변제는 양형에 큰 차이를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의 경우 공탁금액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형이 크게 갈릴 수도 있는 셈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개별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집행유예도 나올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A씨 측과 구두로 판결문 수정을 논의했다면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서면을 통해 (당사자가) 신청하고 결정문으로 결론을 내는 게 정상적인 절차"라며 "구두로 의사를 주고받는 것은 부적정한 업무처리로 보인다"고 했다.
애초에 재판부의 주장처럼 '단순 오기'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문만 딱 봐도 '오기'임을 알 수 있는 것만 경정사유"라며 "공탁금액처럼 기록을 봐야 알 수 있는 것은 경정 사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단순 오기로 볼 수 없고, 상고심에 가서 다퉈야 할 문제였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단순 오기가 맞다"라면서도 "당사자가 상고를 먼저 포기했고 굳이 고쳐달라고도 안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선고 난 다음 주에 변호인이 문의해서 재판부가 '단순 오기'라고 설명하고 원하면 고쳐주겠다고 했는데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서 그냥 둔 상태"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기사건의 경우 (당사자와) 합의했어도 실형을 선고할 수 있다"며 "공탁은 아무래도 합의보다 약하다"고 했다. 재판부 재량으로 실형과 집행유예 모두 선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