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D-3’ 프랑스판 러스트벨트, ‘르펜 대통령’ 탄생시킬까

입력 2017-04-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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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유럽 최대의 정치 이슈인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무소속 에마뉘엘 마크롱이 1, 2위를 놓고 경합하고 있지만 두 후보 모두 지지율 넓히기에 고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중도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과 급진좌파 진영의 장뤼크 멜랑숑이 막바지에 돌풍을 일으키며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 이는 사회당과 공화당 양대 정당에 기반을 둔 후보가 대통령 자리를 다투어온 역대 대선과 판이한 상황이다. 그 배경에 있는 것이 오랫동안 침체된 경제에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기존 2대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다. 후보 4명 중 3명이 기존 2대 정당 이외에서 나왔다는 게 그 증거다. 기존 정당 이외에서 새로운 리더가 나오기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의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게 FN의 르펜이다. ‘반 유럽연합(EU)’을 내건 르펜의 공약은 과격하다.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 솅겐조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유로화를 버리고 옛 프랑을 다시 도입하겠다는 등 유럽 통합을 후퇴시키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의 공약이 전부 실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만일 ‘르펜 대통령’이 탄생하면 유럽이 혼란에 빠질 것은 틀림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진하다고는 해도 르펜의 지지율은 여전히 24%대로 후보 중 최고다. 1차 투표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여론 조사에서는 결선 투표에서는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유력 경쟁 후보에 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르펜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실시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르펜 돌풍은 프랑스판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에 힘입은 것이다. 앞서 정치 신인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쇠퇴한 미국 공업지대, 러스트벨트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기성 정치인들을 꺾고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호주의적인 공약들을 앞세운 르펜 역시 도시지역보다 지방과 외곽의 지지층이 더 두껍다. 한때 철강 도시를 불렸던 프랑스 북동부 플로랑쥬, 이곳은 룩셈부르크와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 일대는 로렌 지역으로 불리며 유럽을 대표하는 철강산지로서 1950년대부터 이름을 알려왔다. 플로란쥬 주변 마을에 펼쳐진 150헥타르의 광대한 산업 지역에 한때는 수많은 철강 생산 설비 및 관련 공장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철강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중심부의 제철소는 가동을 중단한지 오래인데다 마을은 폐허가 됐고 공장과 호텔은 텅텅 비어 유령마을이 됐다. 올 1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약 10%였지마 플로랑쥬 일대 실업률은 20%에 달했다.

한때 세계적인 철강 생산 기지로 이름을 날리던 로렌 지역이 어쩌다 이런 폐허로 전락했을까. 이 지역의 쇠퇴는 1970년대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서 철강 생산이 급증하면서 쇠퇴에 가속도가 붙었다. 여기다 유럽 철강업계의 재편도 로렌을 강타했다. 2006년 인도 재벌 락시미 미탈이 이끄는 미탈스틸이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를 인수했고, 같은 해 미탈은 플로랑쥬의 제철소를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 제철기업도 수중에 넣었다.

아르셀로르 미탈은 이후에도 치열한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채산이 맞지 않는 유럽 제철소를 잇달아 폐쇄했다. 2011년 플로랑쥬에도 구조 조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미탈은 제철소 내 고로 2기를 정지, 사실상 폐쇄를 결정했다. 이는 미탈의 제철소에 의존해온 지역 경제에는 치명적이었다. 직원과 관련업 종사자, 음식점 등 저변 산업까지 포함해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이르렀다. 당시 이 문제는 프랑스 전역으로 알려지면서 사회 문제화했고, 순식간에 정치 문제로 발전, 2012년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올랑드(현 대통령)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표심을 자극,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을 물리치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올랑드는 플로랑쥬와 주변 지역의 고용 유지를 약속했고, 심지어 공장을 국유화할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더불어 외국 기업이 철수할 시, 1000명 이상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은 사업주가 직접 인수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가 공장을 폐쇄하려면 노동자 측과 관계 당국에 폐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인수자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철수할 수 없다. 이게 바로 ‘플로랑쥬법’이다.

결국 정치권의 개입으로 미탈은 이후 플로랑쥬 제철소 내에 철 이외의 다른 생산 라인에 투자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가동이 중단된 고로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플로랑쥬와 주변 지역에선 실업자가 계속 늘었고, 음식점과 호텔 등의 폐업도 잇따랐다. 현재 이곳은 미국 중서부의 황폐한 공업지대에 비유돼 프랑스판 러스트벨트로 불리고 있다. 다만 남은 이들이 기대하는 건 르펜 대통령이다. 고용 확대와 경기 회복을 내걸었던 올랑드 대통령의 공약이 유야무야로 끝나자 현지인들은 사회당에서 등을 돌린지 오래다. 이들은 “사회당은 노동자의 편이라고 했지만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 르펜이 낫다. 그녀는 프랑스를 바꿀 것이다”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한다.

프랑스 니스대학에서 비교 정치학을 연구하는 기레스 이발디 교수는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는 지역과 유럽 통합이 진행되는 가운데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에서는 사회당에 대한 실망감에 국민전선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정당 후보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회당과 공화당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는 것이다. 무소속 마크롱과 좌파당의 장뤼크 멜랑숑이 지지율을 높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FN은 극우정당이긴 하지만 정책은 좌파와 비슷하다. 저소득 및 중소·영세 기업에 대한 지원을 충실하게 한다는 정책을 내걸어 사회당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의 지지를 흡수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르펜과 마크롱의 지지율은 24%로 공동 선두다. 현재로선 23일 1차 투표에서 르펜과 마크롱이 살아남고 5월 7일 2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르펜을 대파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한편 프랑스의 대선은 좀 독특하다. 대선은 5년에 한 번 실시되는데, 1차 투표에서 50% 이상의 표를 획득한 후보가 당선된다. 해당자가 없으면 상위 두 후보를 놓고 2차 투표를 다시 실시한다. 결선 투표는 표를 더 많이 얻은 후보가 이긴다. 2차 투표는 5월 7일. 1965년부터 1차 투표에서 대통령이 갈린 적은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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