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술주 투자였던 IBM 주가 급락에 하루만 8억 달러 손실…세계 부자순위는 2위에서 4위로 추락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의 억만장자 순위에서 버핏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와 스페인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버핏은 그동안 게이츠에 이은 세계 2위 부자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나 올 들어서는 베조스가 부상하는 가운데 자신이 의욕적으로 투자했던 주식들이 줄줄이 추락하면서 부자 순위에서도 계속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이날 버핏에게 타격을 준 것은 IBM이었다. IBM은 전날 장 마감 후 실적 발표에서 지난 1분기 매출이 20분기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IBM 주가는 이날 4.9% 급락으로 마감했으며 장중 한때 6.1% 폭락해 IBM 최대 주주인 버크셔가 하루 만에 장부 가치로 8억1200만 달러(약 9281억 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좀처럼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IBM의 모습에 UBS와 RBC캐피털 등이 일제히 목표주가를 낮추기도 했다. 버크셔는 IBM 주식 8120만 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약 8.6%에 이른다.
미국 CNBC는 버핏은 IBM 투자로 18억 달러에 이르는 배당금을 챙겼으나 배당금을 제외하면 IBM의 현 주가는 버크셔가 주식을 사들였을 때보다 약 10달러 밑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매출이 감소했던 지난 5년간 IBM 시가총액은 20% 증발했다. 이는 같은 기간 뉴욕증시 S&P500지수가 약 68% 오른 것과 대조된다. 아무리 배당금이 많다하더라도 다른 주식에 투자했다면 더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투자자들이 합리적이라면 IBM 주식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특히 IBM은 그동안 기술 분야에는 문외한이라며 투자를 꺼리던 버핏이 처음으로 큰 맘 먹고 사들인 IT 종목이라는 점에서 버핏의 명성을 퇴색시키고 있다. 버핏은 IBM에 처음 투자했던 2011년에 “IT업계의 흐름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IBM은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IBM에 투자했다가 잘못될 가능성은 구글이나 애플보다도 적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으나 그 말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버핏은 또 과거 항공주에 투자했다가 몇 차례 실패를 맛본 뒤 최근 다시 이 부문에 대규모로 투자했는데 이것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포춘에 따르면 버크셔는 최근 유나이티드항공의 ‘오버부킹’ 파문에 따른 주가 급락으로 9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버크셔는 유나이티드항공 모회사인 유나이티드컨티넨털홀딩스 지분 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아메리칸항공 등 다른 종목이 오르면서 손실을 상쇄하기는 했지만 시장은 버핏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자 방식을 펼치는 것에 의아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치투자자로 유명했던 버핏이 이제 가치투자 대신 다른 스타일로 투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도 보내고 있다. 버핏은 항공주 투자에 쓴 맛을 본 이후 항공산업을 막대한 고정비용과 강력한 노동조합, 원자재 가격 변동에 대한 취약성 등의 이유를 들면서 낮게 평가했는데 돌연 태도를 바꾼 배경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지난해 유령계좌 파문을 일으켰던 미국 대형은행 웰스파고 주식을 대량 처분하기도 했다.
버핏의 오른팔인 찰리 멍거 버크셔 부회장은 지난 2월 자신이 보유한 로스앤젤레스(LA) 지역지 데일리저널코프의 수요 연례회의에서 버핏이 실제로 투자원칙을 바꿨다고 확인했다. 그는 “버핏과 나는 훨씬 어려워진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며 “투자를 사냥에 비유하면 과거에는 사냥감이 오기를 천천히 기다리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버핏의 투자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서 그의 후계자들이 사실상 현재 버크셔 투자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버크셔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가 버핏의 유력한 후계자들로 꼽히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버크셔는 버핏이 그동안 외면했던 애플 주식을 전격적으로 매입했는데 이 투자 결정은 사실 버핏이 아니라 이들 후계자가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