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포ㆍ비보, 애플이 채용 꺼렸던 전략 택해…현지 스타 마케팅ㆍ광범위한 오프라인 판매망 구축”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포(Oppo)와 비보(Vivo)라는 이름도 생소한 업체가 중국시장에서 지난해 4분기 각각 1,3위를 차지한 것이다. 2위는 역시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차지했다. 한때 스마트폰 1위였던 샤오미는 5위로 추락했다. 애플은 토종 브랜드에 밀려 지난해 중국 내 아이폰 판매가 처음으로 감소하는 굴욕을 맛봤다.
오포와 비보의 모회사가 중국에서 MP3와 외국어 학습기로 유명한 부부가오(步步高ㆍBBK)다. 그리고 오포와 비보의 신화창조에 BBK 설립자인 돤융핑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돤융핑은 현재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은둔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런 그가 모처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 응해 오포와 비보의 성공비결을 전했다. 블룸버그는 20일(현지시간) 돤융핑이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돤융핑은 “애플이 중국시장에서 우리에 진 것은 현지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오포와 비보는 애플이 채용하기 꺼렸던 전략들을 택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플은 다른 곳에서 성공을 거뒀던 공식들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다”며 “반면 우리는 싼 기기에 고급 기능을 넣는다는 전략 등을 과감히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애플도 결함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를 이길 수 없다”며 “때때로 완고해 보이는 완벽주의 전략으로 애플은 운영체제(OS)와 같은 위대한 것들을 만들어냈지만 우리도 다른 영역에서 그들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과감한 투자 베팅으로 성공 가도를 달려온 돤융핑에게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56세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혁명 발상지인 장시성 출신인 돤융핑은 국영 진공관 업체에서 일하다가 1990년께 광둥성에서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첫 번째 히트작은 카트리지 슬롯이 두 개 장착된 게임기 ‘쑤보르(Subor)’였다. 닌텐도를 벤치마킹한 쑤보르는 1995년까지 10억 위안(약 1628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돤융핑은 두 번째 벤처기업인 부부가오를 설립했다. MP3 플레이어와 DVD 플레이어, 어학기 등을 생산하는 BBK는 ‘점점 높아진다’는 중국어 뜻처럼 성장했다. BBK의 자회사인 부부가오커뮤니케이션이큅먼트는 중국에서 2000년 무렵에 노키아, 모토로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휴대폰 생산업체가 됐다. 돤융핑 자신은 40세가 된 2001년에 투자와 자선사업에 전념하고자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당시 그는 존 챔버스 시스코시스템스 회장으로부터 맨션을 구매했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처음으로 공개해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돤융핑은 은퇴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 BBK는 주력 피처폰 판매 둔화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있었다. 돤융핑은 “당시 우리는 종업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하청업체들은 돈을 잃지 않도록 평화롭게 회사 문을 닫는 방법을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브레인스토밍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돤융핑의 리더십 아래 새로운 회사 2개가 탄생했다. 지난 2005년 돤융핑의 최측근인 천밍융은 음악 플레이어 자회사 오포를 세웠는데 오포는 2011년 이후 스마트폰 사업에 전념했다. BBK는 또다른 자회사인 비보를 2009년 설립했고 여기는 돤융핑의 ‘제자’인 선웨이가 이끌게 됐다. 돤융핑은 “스마트폰을 만들자는 것은 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며 “그러나 우리가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오포와 비보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두 회사는 현지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과 중국 전역의 광범위한 오프라인 판매망을 공략하는 접근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또 젊은층에 어필하고자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아이폰 등 고가폰과 다름이 없는 스마트폰을 팔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오포와 비보 제품은 충전 속도와 메모리 용량, 배터리 사용시간 등 스펙 일부에서 아이폰을 능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마침내 결실을 얻었다. 리서치 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오포와 비보는 1억4700만 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이는 화웨이 판매량 7660만 대의 배 가까운 수치다.
돤융핑이 가장 열정을 보이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주식투자다. 그는 지난 2006년 ‘버핏과의 점심’에 당시 사상 최대치인 62만1000달러를 치르기도 했다. 돤융핑 자신도 친구인 윌리엄 딩이 설립한 IT 기업 넷이즈를 수렁에서 구출하면서 투자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미국증시 상장사였던 넷이즈가 닷컴버블 붕괴 이후 주가가 바닥을 찍고 있을 때인 2002년 200만 달러에 지분 5%를 사들인 것이다. 당시 넷이즈 주가는 주당 16센트 수준이었다. 이후 돤융핑은 넷이즈 주가가 40달러를 찍었을 때 지분 대부분을 매도했다고 밝혔다.
돤융핑은 중국 최대 백주업체 구이저우마오타이 주식을 지난 2012년 말 주당 180위안에 사들였다. 이후 마오타이 주가는 2014년에 반토막 났지만 돤융핑은 계속 주식을 보유했다. 마오타이 주가는 현재 370위안이 넘는다.
애플을 무너뜨린 돤융핑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애플과 아이폰의 가장 큰 팬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집은 애플 본사와 가까운 곳에 있으며 해외자산 중 상당량은 애플 주식으로 돼 있다. 돤융핑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여러 행사에서 만났다”며 “그가 나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애플은 놀라운 회사이며 우리가 배울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누구를 능가한다는 개념이 없다”며 “대신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돤융핑은 “현재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이며 가장 큰 고민은 회사 승계 문제와 누가 자신의 뒤를 잇더라도 기업문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나는 수년 전부터 복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며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 나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비보와 오포는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앞날을 예측하기는 힘들다. 이에 두 회사도 스마트폰 기능에서 마케팅 전략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오포는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5배 줌을 자랑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공개하기도 했다. 캐널리스의 니콜 펑 선임 이사는 “두 회사 모두 돤융핑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문 인력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젊은 소비자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내 관리자 대부분은 젊고 또 졸업 이후 줄곧 오포나 비보에서 계속 일해왔을 정도로 충성심도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