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올라선 반도체 산업…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업황 호조의 이유는 ‘4차 산업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신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등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다량의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수요는 늘고 공급량은 한정돼 있으니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특히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업황 호조가 더욱 반갑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달 64억 달러(약 7조3400억 원)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물론, 위기도 공존한다.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이 난징(南京)에 300억 달러, 우리 돈 35조 원을 들여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향후 10년간 17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주로 하던 인텔도 공격적인 메모리 투자에 나섰다. 향후 글로벌 업체들 간 제2의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
2일 성남시 판교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우리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의 4 ~ 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 기업의 연구 개발과 투자, 대학의 인재 양성이 유기적으로 이뤄져 대한민국 반도체의 최초·최고의 신화가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산업은 슈퍼 호황기에 접어들었다고 얘기한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호황기 사이클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으로 유발되는 다양한 수요가 얼마나 클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더 안정적으로 갈 것이다. 호황기가 2 ~ 3년 내에 주춤할 수도 있지만, 다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PC에 이어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스마트폰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반도체 시장에 대한 위기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PC와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로, 반도체는 이들 제품 시장 상황에 크게 영향받고 의존도 또한 높다. 하지만 스마트폰 고사양화에 따른 메모리 탑재 용량 증가가 물량 성장 정체를 상쇄하고 있다. IoT·AI·클라우드 등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활성화에 따른 데이터 트래픽 급증, 고용량·고성능 서버, 스토리지 필요성 증대로 3D낸드 기반의 SSD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고용량·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본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치킨게임이 재현될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고 보이지만, 경쟁이 심화할 것은 분명하다. 특히 중국 업체들과 인텔 등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결국 기술 경쟁력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까 싶다. 국내 업체들은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시장 우위를 더욱 강화하는 ‘초격차 전략’ 및 차세대 메모리 구현을 통한 제품군 차별화가 요구된다. 더불어 중국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6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되, 무조건적인 경계보다는 상호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펼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고지만, 전체 시장의 75%에 달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아직 미흡하다. 극복 전략은 무엇인가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는 같은 반도체이지만, 각각의 경쟁 요소와 생태계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창의적 인재와 도전적인 중소 팹리스 등 반도체 산업 생태계 내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취약했던 부분이다.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려면 기본적으로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인재가 반도체뿐 아니라 타 산업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가지고 있거나, 타 산업 속 인재가 반도체에 대한 이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인력을 ‘융합인재’라 표현할 수 있다. 이들 융합인재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타 산업 영역에서 반도체 적용이 구현될 수 있어야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융합인재가 양성될 수 있는 융합교육을 위해서는 대학의 모든 공학계열 학과에 반도체와 ICT 분야에 대한 기본 교육이 필요하다. 협회 역시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전문인력 양성과 취업 연계 등 청년층의 반도체 분야 유입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소업체다. 반도체 소자·장비·재료·팹리스 등 국내 중소업체 전망과 지원책은
“전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국내외에서 반도체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분야는 반도체 경기 상승세와 발맞춰 동반상승할 전망이다. 팹리스 기업 역시 사업 기회 확대와 창업 확산이 예상된다. 올해 협회는 국내 반도체 산업계에서 시급하고 취약한 부분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기업 양강 구조 극복을 위해 반도체 중기·벤처·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하반기 2000억 원 규모 반도체성장펀드 운용을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반도체 산업 생태계 내 플레이어 간 연결고리 구축을 위해 ‘파운드리-팹리스 협력 모델’ 구축에 나서고 있다. 국내 팹리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국내 대기업의 파운드리 설비를 활용해 시제품이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MPW(Multi Project Wafer·하나의 웨이퍼 안에 여러 설계 도면을 적용해 생산할 수 있는 방식) 서비스를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개별 기업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 반도체 산업 지원은 어떤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나
“최근 몇 년간 반도체 분야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이른바 ‘메모리 1등 착시 효과’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은 메모리 한 분야인데, 마치 전체 반도체 산업이 1등인 것으로 오인됐다. 소재·부품·재표·장비·설계 등 반도체 생태계 각 분야를 책임지는 중기·벤처·스타트업에 지속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도 투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반도체 관련 신규사업은 한 건도 없었지만, 최근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태계 조성 지원 강화책을 내놓고 올해 사상 최대 수출 달성을 다짐한 것은 긍정적이다.”
△최근 중국이 대대적인 반도체 투자에 나서면서, 국내 반도체 인력 유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가 핵심산업기술이나 정부 R&D가 투자된 연구개발, 국가보안기술자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엄격한 관리를 해야 한다. 그 외 부분은 현실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국내 반도체 인력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적 커리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면서 여러 산업 분야에 반도체가 적용될 수 있다. 즉 반도체가 아닌 타 산업에서 반도체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따라서 국내 반도체 인력이 중국이 아닌 국내 여러 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융합교육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 반도체 산업이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대표적인 것은 직지심체요절,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측우기, 그리고 반도체를 꼽을 수 있다. 앞의 세 가지와 반도체의 공통점은 인류 발전과 지식정보 확산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반면, 차이점은 ‘세계 최초’ 등극 이후 투자·연구개발·지속적 혁신이 뒤따랐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 역사 속 유물로 남아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직지심체요절, 측우기와 달리 반도체는 지속 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으로 세계 최고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호황기인 지금 더욱 꾸준한 투자와 R&D가 필요하다.”
◇남기만 부회장은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동국대학교 무역학 학사, 위스콘신대학 경제개발 및 공공정책학 석사, 국방대 국방관리과 석사를 마쳤다. 1984년 제29회 행정공시를 통해 공직 사회에 발을 들였다. 1996년 상공부, 통상산업부 등을 거쳐 2006년 산업자원부 행정법무담당관, 외교통상부 주베트남 1등 서기관, 산업자원부 기계항공팀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에는 산업자원부 부품소재총괄팀장, 지식경제부 운영지원과장을 거쳤고 2011년 지식경제부 주력산업정책관,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으로 근무했다. 2014년 4월부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