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유대인 출신 2차 대전 겪어…이스라엘·加·美·호주 거쳐 英 정착
유럽의 대표 지성으로 불려온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9일(현지시간) 타계했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향년 92세다.
바우만의 연인이자 폴란드 사회학자인 알렉산드라 카니아는 이날 폴란드 일간인 가제타 비보르차를 통해 “그가 가족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25년 폴란드 서부 도시 포즈난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바우만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의 가족은 모두 소련으로 피신했다. 그는 1943년 소련 통치 하의 폴란드 인민군에 입대해 고속 승진하며 소련의 베를린 침공에도 동참했다. 전후에는 폴란드 노동자당에 가입하고 동시에 바르샤바대학에서 사회학을 배웠다. 그러다가 1953년 반유대주의가 강해지면서 군에서 강제로 제대해야 했다. 이듬해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바르샤바대학에서 철학·사회과학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1년부터는 시사지 ‘사회학 연구’ 편집장을 맡았고, 1966년 폴란드사회학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다가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6일 전쟁 발발을 계기로 친 이스라엘파로 간주돼 바르샤바대 교수직과 국적을 박탈당했다. 이에 폴란드를 떠난 그는 이스라엘 캐나다 미국 호주를 거쳐 영국에 정착, 1971년 리즈대학 사회학 교수로 취임했다.
그가 학계 주목을 받은 건 64세이던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펴내면서다. 이 책은 유대인 집단학살 문제를 분석하면서 근대적 관료제와 함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도구적 이성’이 학살의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나치의 폭력성은 물론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의 다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1992년 아말피상, 98년 아도르노상을 수상했다. 2010년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상을 받았다. 작가 자니아 바우만과 결혼해 세 딸을 뒀으며, 세상을 뜨기 전까지 연인 카니아와 함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