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치경제학] 퍼주고, 겁주는 썩은 정치… 돈도 신뢰도 줄행랑

입력 2017-01-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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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망친 정치 : 브라질·베네수엘라·터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돼 우리나라에까지 전염된 아시아 외환위기, 전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며 세계 패권국을 자칭했던 미국의 추락, 한때 두 자리 성장세를 구가하며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했던 중국의 부진. 언뜻 보면 정치와 무관한 경제 분야의 문제로만 파악되지만 사실 이같은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정치 문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선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현상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우리나라가 국정 혼란과 내수·수출 부진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것처럼 말이다. 일부 학자는 정치학과 경제학이 전혀 다른 의미의 학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분야는 이미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경제학의 원래 의미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치닫고 있다.

◇부패 정부에 고꾸라진 삼바 경제=브라질은 2000년대 전후 고속 성장으로 주목받았던 신흥국 그룹 ‘브릭스(BRICs)’의 일각을 차지할 만큼 앞날이 유망한 시장이었다. 그러나 국영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비리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잇따라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무디스는 2015년 8월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적격 등급 중 최하위로 떨어뜨렸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같은해 9월 정크 수준인 ‘BB+’로, 이어 피치는 10월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바로 윗등급인 ‘BBB-’로 강등했다.

이들 신용평가사는 재정 악화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브라질에 대한 신뢰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들었다. 이에 브라질 정부는 긴축과 증세를 포함한 재정확충 방안을 발표해 추진하려 했지만 노동계와 재계의 반대로 이 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호세프 대통령은 2015년 10월 재선을 위해 국가의 재정적자를 숨기고자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함께 페트로브라스 비리 사건에 연루돼 결국 2016년 9월 브라질 역사상 두 번째 탄핵 대통령이란 오명을 쓰고 대통령궁에서 쫓겨났다.

그럼에도 브라질의 경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6 리우올림픽 효과가 무색하게 파산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가 속출하고,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 대행마저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제는 악화일로다.

◇무상복지 남발하다 위기 맞은 베네수엘라=오일머니 덕에 한때 남미 최대 경제부국으로 떠올랐던 베네수엘라도 정치가 운명을 뒤바꾼 대표적 사례다. 베네수엘라는 정치가 안정된 시기에는 남미에서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오일쇼크에 국제유가 폭락,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외채가 급증하면서 경제는 치명상을 입었다.

1989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즈가 두 번째 집권한 이후 물가는 급등하고 그런 가운데 긴축 정책을 도입하면서 빈부 격차가 커져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좌파 우고 차베스에 의한 쿠데타도 그때 일어났다. 차베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페레즈의 노선은 1994년 집권한 라파엘 칼데라 정권에서도 유지,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이에 민심은 폭발했고 결국 1998년 실시된 대선에서 좌파 차베스가 승리를 거머쥐면서 베네수엘라는 전환기를 맞는다. 차베스는 고유가 덕분에 윤택해진 오일머니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빈민층에 대한 토지 재분배 등 무상복지를 실현했다. 그는 1999년 2월부터 2012년 4선에 성공하기까지 빈민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13년 그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니콜라스 마두로가 바통을 이어받은 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2015년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오일머니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2015년 평균 물가상승률은 197%였고, 2016년은 700%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로 인해 식료품을 살 때도 지폐를 저울로 달아 값을 치를 정도다. 심지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웃나라 콜롬비아로 넘어가겠다는 국민도 속출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기존 최고액권인 100볼리바르화 사용을 금지했지만 신권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경제 혼란만 가중됐다. 현재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연일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공포정치에 위축된 터키=최근들어 빈번한 테러로 몸살을 앓는 터키는 공포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된 사례다. 2016년 3분기(7~9월) 터키 GDP는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하며 2009년 3분기 이후 7년 만에 쪼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군부의 쿠데타 시도 이후 정부가 공포 정치에 나서면서 소비와 관광업이 위축된 게 직격했다고 분석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교사, 경찰, 공무원 등 수만명을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하거나 해임했는데, 이 여파로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와 관광업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2016년 터키 경제성장률은 3%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이후 3기를 연임했다. 얼마 전에는 2029년까지 집권을 노리고 대통령 중심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 야심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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