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CSR칼럼] 자괴감을 넘어 책임감으로

입력 2016-12-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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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권 한국SR전략연구소 부소장

“대학생들이 모여서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에 대해 포럼을 하려고 여러 기업에 후원 요청을 했었어요. 정말 많은 기업들에 문의를 넣었는데 단 한 기업도 후원해주지 않았어요.”

전국의 대학생 300명이 모여서 UN의 지속가능한개발목표에 대해 토론하고,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보겠다는 멋진 계획을 세웠다. 기업들에게 요청했던 것은 행사 진행을 위한 실비 100만원의 후원. 두 달 동안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 기업들에 제안서를 보냈지만, 모금에 실패했다. 그러나 다행히 행사는 잘 치렀다. 어느 소기업이 100만원을 후원했고, 뜻에 동감하는 대학이 공간 등을 제공 했다.

어느 기업재단에선 분기별로 비영리조직과 복지기관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공모 형식으로 진행한다. 한 기관 당 5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 정도 지원되는데, 한 번 공모를 할 때마다 200개가 넘는 기관이 지원한다. 이중 60개 정도가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재단 내외부의 심사위원의 토론심사를 통해 이 중 4~5개 정도의 조직에 지원이 결정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역아동센터는 혹독한 겨울을 날 난방시설을 갖추고, 장애인 거주 시설은 보행이 불편하고 위험한 바닥을 교체한다.

“사회공헌 담당자가 하는 일은 거절하는 일입니다.”

어느 사회공헌 담당자의 말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팀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후원을 요청하고 문의하는 메일과 팩스, 공문, 전화, 방문요청과 방문이 쏟아진다. 이 모든 요청에 응답할 수 없으니 거절하는 것이 일이다. 요청하는 사람도, 거절하는 사람도 마음이 무겁다. 단돈 수백만원으로 개선될 수 있는 어르신의 식사,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 눈에 밟힌다.

‘자괴(自愧)감’.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

돈 300만원이 필요하다는 복지시설 사회복지사의 제안을 거절하는 사회공헌 담당자의 마음을 설명하는 말. 한 여름 아이들의 간식을 마련하기 위해 희망을 안고 찾아왔지만 기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복지기관 종사자의 마음을 설명하는 말. 스스로 부끄럽고, 이 세상의 소외된 이들이 안쓰러운 그런 보편적이고 선한 윤리의 밑바닥을 설명하는 말. 자괴감.

사회공헌에도 자괴감이 있다면 이런 것 아닐까? 어려운 사람이 내민 손엔 철저하면서도 청와대의 한 마디면 넙죽 돈을 내는 이 현실. 사회공헌예산을 ‘뇌물’처럼 사용해 공정거래를 망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며, 기업의 시민의식을 뿌리부터 부패시키는 기부를 가장한 거래.

지난 며칠 사이 세상은, 지난 몇 년간 무척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지만 눈감고 모른 척 했던 일들로 갑자기 시끄러워졌고, 자괴감은 대통령부터 어린 아이까지 사용하는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이 말이, 부디 남에게 부끄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윤리적인 책임감을 느낀다는 의미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이 형국은 실로 참담하다.

긴 시간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 토론했고 실천했고 교육했지만, 거대한 권력과 이권이 개입되는 순간 이 사회의 노력은 모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곤 했다. 마치 한국의 시민사회의 노력과 국제적인 협력으로 튼튼하게 쌓아올린 국제개발협력의 수준을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만든 저 코리아 에이드 같은 사업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이상한 것들을 원래대로, 지극히 정상적이며 가장 근저에 있는 윤리가 작용하는 형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다. 그리고 이를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노력과 끈기다. 어떤 권력과 이권이라도 우리의 상식과 윤리는 무너뜨릴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쌓아올릴 수 있는 경험과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광장의 촛불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자의 교체만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선함과 책임감을 비루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만들었던 한 시대에 대한 종말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광장은 뜨겁고, 지금 우리 안에 미래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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