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1월 29일 서태후-노대국 청나라를 멸망케 한 황태후

입력 2016-11-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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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부 차장

서태후(1835.11.29~1908.11.15)는 한고조 유방의 처인 여후, 당나라의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청나라는 서태후가 사망한 후 3년 지나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서태후는 보수파의 수장으로 권력만을 추구해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가 재정을 좀먹어 결국 나라를 멸망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태후는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으로 10대 동치제의 어머니였으며 11대 광서제의 백모로 무려 48년간 권력을 휘둘렀다. 동치제와 광서제 모두 서태후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다가 요절했다.

청나라는 동치제 시절 30년간 자강 운동인 양무운동을 펼쳤으나 청일전쟁의 패배로 무위로 돌아갔다. 특히 서태후는 청일전쟁 패배의 원흉으로 꼽히고 있다. 군함 살 돈을 횡령해 자신의 정원인 이화원을 건설했다는 얘기가 아직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물론 실제로 횡령했는지 여부는 지금껏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화원 건설 예산이 당시 청나라 해군 예산의 절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태후에게 비난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서태후는 또 다른 근대화 운동이었던 변법자강운동을 좌절시켰다. 위안스카이(袁世凱)와 손잡고 무술정변을 일으켜 광서제를 유폐하고 개혁파를 대거 숙청한 것이다.

그녀는 사치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밤마다 남자들을 갈아치우며 향락을 즐겼고, 한 끼 식사비는 당시 중국 농민의 1년 치 식비에 맞먹었으며, 보석 수집광이었고, 옷은 3000여 상자에 달했다. 죽은 이유도 자신의 생일에 앞서 며칠간 계속된 잔치로 과식하다가 이질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시는 나처럼 여인이 정사에 나서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후에 무덤이 도굴당하면서 시신이 훼손되는 수모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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