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유럽의 포퓰리즘 확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럽 곳곳의 포퓰리즘 정당들이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유럽 공동체에 대한 ‘반 체제(anti-establishment)’주의에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고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내 3대 국가가 향후 10개월 내 대형 선거를 앞두고 있어 포퓰리즘 확산 여부에 따라 정치지형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완전히 빗나간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처럼 현재 집계되지 않는 억눌린 포퓰리즘이나 민족주의 성향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론조사의 예측이 실제 결과와 달랐던 것은 이번 미국 대선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역시 그랬다. 국민투표가 진행됐던 6월23일 이전까지 브렉시트가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던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유럽 체제에 강한 염증을 느낀 사람들의 승리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 결과와 브렉시트의 원인은 비슷한 맥락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WSJ는 소위 정치 엘리트로 불리는 기존 특권층으로부터 권력을 되찾자는 간단한 메시지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배경에는 이민제도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즉 브렉시트 결과를 초래했던 ‘반체제적 분노(anti-establishment anger)’가 공화당이나 민주당 주류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로 하여금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한 영국 극우 정당인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서구 전체가 실패한 정치 체제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브렉시트가 트럼프의 승리에 연장선이 된 것처럼 트럼프의 당선이 유럽 주요 국가의 주요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내년 5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르 펜 대표도 트럼프 당선에 대해 “트럼프의 승리는 자유의 승리”라면서 “이러한 자유를 가진 프랑스인은 그들에게 수갑을 채웠던 시스템을 깨뜨릴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외에 독일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으며 이탈리아는 12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기성 정치 체계에 반기를 들며 창설한 5성운동이 예상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고 독일에서도 반난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대안당)’도 선전하고 있다. 동유럽인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불가리아 등에서도 최근 국수주의자들이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WSJ는 이들 극우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나머지 결단력 있는 해결방안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WSJ는 독일 나치와 소련을 언급하며 이들 모두 극우주의에 뿌리를 뒀으며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독일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인 지그마 가브리엘은 프랑스 르펜과 미국의 트럼프 우세에 대해 “나빴던 옛 시대로의 회귀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